"셋방 16번만에 장만한 내 집"|해외근로자 가족 수기 장원 권현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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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 은평구 수색동 205의 1204호. 대지 46평에 건평 27평, 방 4개 짜리 단층 슬라브 집. 이것이 현재 현대건설 배터리 기능공으로 이라크의 유시 고속도로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서정휘씨(41)와 부인 권현순씨(36)가 땀과 피와 눈물, 크고 작은 실패와 병고로 얼룩진 15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마련한 자랑스런 집.
『68년 천호동의 부엌도 없는 판잣집 같은 단칸 셋방에서 시작하여 왕십리·유락동 등 15년간 모두 16번 셋집을 전전했습니다. 내 집을 산지 벌써 1년 반이 넘었는데 아직도 수도꼭지를 틀면 찬물·더운물이 나오는. 내 집이 꿈만 같아요.』
노동부가 올해로 4회 째 해외취업 근로자가족을 대상으로 한 생활수기 모집에서 『더운물이 나오네』로 최우수 입상자로 뽑힌 권현순씨. 16년째의 결혼생활은 병약하고 가난한 남편을 도와 새마을 취업 근로장으로, 보세 뜨개질과 구슬감기로, 파출부로 힘겹고 고단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그의 모습은 소박하고 맑다.『문장력은 세련되지 않았지만 진실을 전달하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인간 드라머가 감동을 준다.』 는 생활수기 심사위원 윤흥길· 최창학씨의 심사평처럼 그의 생각이나 생활 모습은 진실하고 소박하다.
버스 삯을 아끼기 위해 항상 걷고 식품류를 중심으로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사지 않는 초 절약의 습관이 몸에 배 『무얼 사려면 겁이 난다』며 『안 쓰는 것이 버는 것』 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는 항상 간편한 스웨터와 몸빼 차림으로 지내기 때문에 「몸빼 아줌마」란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외출복이 없는 그지만 모처럼의 신문사 나들이를 위해 세를 준 옆방 새댁으로부터 빌어 입었다는 꽃 분홍 한복이 화장기 없는 얼굴과 어색지 않게 어울렸다. 크도 작도 않은 몸이라 옷을 얻어 입기가 수월하다며 그는 조용히 웃는다.
고향이 경북 영풍군인 이들 부부는 68년 중매로 결혼.
빈한한 집안의 막내로 15살에 상경, 힘들게 자동차 베터리 공이 된 학력이라곤 국졸이 전부인 남편의 월급은 8천 원의 박봉. 3만원의 단칸방도 어렵게 그러나 무조건 1만원을 저축했고 모자라는 생활비는 아내 권씨가 행상을 나서 번 돈으로 꾸려갔다.
『결혼 10개월만에 6만원 짜리 전세로 늘렸고, 그 후에도 벅차다싶게 적금을 부었습니다.고통스러웠던 것은 남편의 학력이 낮아 정식 기능공 자격을 갖지 못해 작은 회사만을 전전해야했고 그래서 생활계획이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남편 서씨가 신경질환·영양실조 등으로 결핵성 임파선 염을 앓아 피고름을 흘리면서도 일터로 나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것은 지금도 악몽처럼 기억되는 날들이다.
모처럼 마련했던 작은집에 입주도 못한 채 남편이 자동차 납품사업을 차렸다가 실패를 하는 등 시련은 끊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내의 병구완으로 건강해진 남편은 4번째로 해외취업에 나가 매달 55만원씩의 월급을 보내온다.
고향에는 쌀은 수확해먹을 땅도 2천여 평 사두었다.
찬석 (중3)· 근석 (중1) 두 아들은 착한 모범생. 권씨 자신은 지금도 파출부로 일을 하며 틈틈이 책을 읽고 구슬감기 부업을 한다. 10여 만원 자신의 수입만으로 생활을 꾸릴 수 있어 남편의 월급은 모두 저축으로 돌린다. 『외로움이요? 열심히 바쁘게 살다보니 외롭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어요.』<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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