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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팔아 진품 사는 요지경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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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 29면

늦바람이 무섭다. 뒤늦게 접한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관음증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스타일#: ‘럭셔리 포스팅’이 불편한 이유

눈을 떼지 못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럭셔리 포스팅’ 때문이다. 클릭하면 할수록 추리소설만큼 증폭되는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쏟아진다.

일단 주인장들의 외모는 연예인급, 아니 솔직히 연예인보다 예쁜 이들도 많다. 더구나 애까지 낳은 주부라고 하면 더 할 말이 없다. 이들이 올린 사진들로만 보자면 입은 더 벌어진다. 특급 호텔과 백화점을 대형마트 가듯 들르고, 기분 전환차 해외여행 떠나는 건 기본. 최고급 호텔 투숙도 비일비재하다. 입소문 난 레스토랑은 물론이요 백화점 VVIP를 위한 행사에 가는 사진도 빠지지 않는다. 하나 갖기도 힘든 명품백을 색깔별로 보여주는 건 애교 수준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모든 먹고 입고 즐기는 행위가 ‘대충’ ‘어쩌다’ ‘급하게’ 정해지는, 그래서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는 점이다.

처음엔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한 마디로 ‘어떻게 저렇게 살지?’ ‘남편이 누굴까(다수가 전업주부다)’다. 보이는 정황만 따져봐도 매달 생활비만 1000만 원은 족히 넘겠다며 덧셈을 한다. 그러다 슬슬 우울해진다. 세상에 저런 여자들도 있는데, 라는 질투와 시기다. 저들의 반짝이는 생활에 비하면 내 비루한 현실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재벌 총수 딸도 아닌데, 그저 또래 엄마일 뿐인데 이토록 사는 모양새가 다를 수 있나 싶다.

그러면 뭐하나. 곧 체념으로 접어든다. 저들은 저들이고, 나는 나라는 깨달음이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TED 강연에서 한 말이 조금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페라리를 타고다니는 사람을 보거든 상처받기 쉽고 애정이 결핍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세요.”

그리하여 결국 마지막은 즐기는 단계가 된다. 어차피 이번 생애에선 못 누릴 게 뻔한 것들, 그러니 눈요기라도 해보자는 심산이다. 영국 왕실을 보는듯한 거리감을 유지하면 된다. 냉정하게 말해 SNS의 근간이 자랑질과 허세질이라면 이건 그저 정도의 차이라는 논리도 세운다.

허나 이렇게 혼자 북치고 장구 치며 삐딱함을 거두려 해도, 몇몇 광경은 여전히 씁쓸하고 꼴사납다. 이웃과 팔로워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이들 때문이다. ‘급하게 차려입느라 엉망’이라며 올린 사진 속 옷 한 벌, 가방 하나가 그래서 순수하지 않다. “언니 부러워요” “언니 너무 예뻐요”라며 열광하는 추종자들을 만든 이후 슬쩍 쇼핑몰이나 공동구매로 발을 옮기는 거다. ‘문의가 폭주해서’ ‘특별한 기회를 얻어’ 짝퉁을 만든다. ‘무슨무슨 스타일’을 붙이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한 해외 브랜드 홍보 담당자가 여기에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진품을 사고, 이들이 다시 브랜드의 VIP가 되는 거예요. 그럼 브랜드 입장에서는 중요한 고객이니 행사에 또 초대하게 되고, 이런 게 다시 포스팅 되고…. 진짜 웃기는 상황이죠.”

럭셔리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당연히 호화로움과 사치다. 하지만 그 뒤엔 고급스러움·우아함·문화·가치라는 키워드가 늘 함께 한다. ‘진품과 딱히 다를 바 없다’는 옷·가방을 팔아 치장한 럭셔리는 진짜 럭셔리일까. 럭셔리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장사 포스팅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다.

글 이도은 기자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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