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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으로는 최대 ‘부장’까지 올라 최고의 사내정치는 ‘일 잘하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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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 06면

직장인들은 사내정치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여긴다. 내가 잘하면 인간관계 능력이 좋은 거고, 남이 잘하면 손바닥만 잘 비비는 거다. 사내정치는 ‘사는 방법’이다. 그래서 고민한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잡코리아ㆍ중앙SUNDAY 공동 설문] 직장인과 사내정치

중앙SUNDAY는 취업 컨설팅 업체 잡코리아와 공동으로 직장인(응답자 1815명)을 대상으로 사내정치에 대한 속마음을 알아봤다. 전체적으로 보면 직장인들은 사내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여긴다. 기업, 특히 대기업에서 ‘사내정치’ 혹은 ‘파벌’이란 단어는 금기어다. 하지만 실제론 뒤에서,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다 한다고 여기고 있다. 능력으로만 평가받고 싶지만 줄을 잘 서야 성공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해 받는 불이익도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사내정치를 잘하기 위해선 내 능력은 적극 알리고 경쟁자는 은근히 깔아내려야 한다고 여긴다. 줄도 잘 타야 한다. 하지만 사내정치가 다는 아니다. 사내정치에 능한 사람보다 능력 있는 선후배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고 ‘일 잘하는 게 최고의 사내정치’라는 말에 절반 이상이 동의했다.

사내정치 끼지 못하는 소외감도 상당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 사내정치가 있느냐는 물음에 직장인 열 명에 아홉 명은 “있다”(88.4%)고 답했다. 공정한 평가와 보상을 위해 없어져야 하지만(38.1%), 어쩔 수 없는 필요악으로 없어지지 않을 것(47.7%)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내정치를 잘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을 알려야 하고(54.3%), 실세를 파악해야 한다(49.4%). 소수의 강력한 지지세력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15.5%). 임직원 경조사를 챙기고(14.9%), 나를 따르는 직원은 어떻게 해서든 보호해야 한다(12.3%). 소수 의견 가운데는 ‘유리한 상황은 증거를 남기고, 불리한 상황은 구두로 한다’도 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사내정치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다(63.3%)고 답했다. 주로 인사고과 저평가, 관계 스트레스, 소외감, 승진기회 박탈 등이다.

사내의 경쟁자는 어떻게 물리쳐야 할까. 실적과 능력으로 압도한다(69.5%)가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은근한 업무 비협조(29.6%), 비리 또는 무능력한 사례 소문내기(22.5%), 술자리·식사자리에서의 비난(14.8%)이 뒤를 이었다. 경쟁자의 경쟁자와 협조하거나 외면하고 왕따 시킨다는 응답도 있었다.

사내정치가 가장 치열한 직급은 과장(31.3%)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그 뒤는 부장(23.9%), 차장·대리의 순이다. 지금 회사에 ‘사내정치가 있느냐’는 물음에서도 과장급 응답자는 전체 평균(88.4%)보다 높은 92.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일보다 자기 따르는 후배에 호감
응답자들은 능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리는 부장(35.2%)까지고 그 이상은 사내정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내정치적 파벌은 주로 같은 대학(32.8%), 같은 부서 근무 경험(31.7%), 유사한 업무처리 성향(18.1%), 고향(10.5%)에 의해 형성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사내정치가 줄서기라면 결국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건데 그 첫째는 직속 상사(32.3%)고, 직속 상사의 상급자(24.0%), 오너 일가를 비롯한 핵심 실세(17.3%)가 뒤를 따랐다.

‘일 잘하는 후배’와 ‘나를 따르는 후배’ 가운데서 선택하라면 ‘나를 따르는 후배와 함께 일하겠다’의 비율(53.9%)이 다소 높았다. 선배의 경우 ‘나를 챙겨주는 선배’와 ‘능력 있는 선배’의 비중이 비슷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난 후배와 사내정치에 능한 후배를 놓고서는 능력 있는 후배와 함께 일하겠다는 응답이 많았다(79.1%), ‘일 잘하는 게 최고의 사내정치’라는 말에 동의하느냐는 물음엔 56.1%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사내정치를 한 단어로 요약해 달라는 질문엔 다양한 답이 나왔다. 필요악, 두통(아~머리 아파), 희망(능력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 슬픈 현실, 생명 연장, 줄타기, 여우 짓, 경쟁, 노예(직장인이라면 피할 수 없다), 망하는 지름길, 서러움, 보이지 않는 전쟁 등이다. 상당수 직장인이 사내정치는 골치 아픈 것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하며 잘하면 좋은데 자칫 잘못했다간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광운대 탁진국(산업심리학) 교수는 사내정치와 파벌 형성에 대해 최고 경영진의 역할을 강조했다. 능력과 무관하게 평가가 이뤄지고 파벌이 형성되면 회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내정치가 횡행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사내정치가 공공연한 조직이라면 살아남기 위해 직장인들은 사내정치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며 “최고경영자가 사내 파벌 형성을 막고 공정한 평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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