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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고단한 연명치료, 진정 환자를 위한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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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400쪽, 1만6500원

아름다운 죽음은 없지만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이자 의학 저술가인 아툴 가완디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의학이 인간다운 죽음을 지켜주고 있지 못하다고 고백한다.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죽음 대신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채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의학적 싸움을 벌이다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삶은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다. 저자 아툴 가완디는 죽음의 문제를 의학과 기술의 손에만 맡기지 말고 스스로 선택해보라고 말한다. [사진 부키]

 책은 의학 저널에 실린 연구 논문이나 수치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고백은 경험에 근거한다. 그래서 더 진솔하고 진정성 있게 와 닿는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공장 직공이었던 사람, 간호사였던 사람, 조그만 가게 운영자 등 죽음을 앞둔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들과 마찬가지로 의사였던 저자의 아버지도 등장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소박하다. ‘가족이나 친구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소박한 소망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선 1945년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1980년대는 이 비율이 17%로 떨어졌다. 장소의 변화는 죽음의 정의를 바꿔놓았다. 죽음은 연명치료 기기의 스위치를 끄는 것으로 대체됐다. 비단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 26만8100명 중 73%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았다. 반면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비율은 16.6%에 불과했다. 1989년 재택(在宅) 임종이 77.4%였던 것에 비하면 급격히 늘어난 수치다.

아툴 가완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치료를 하는 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하지만 최대와 최선은 꼭 일치하지 않는다고 가완디는 지적한다. 상황에 따라 연명치료는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것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임종이 다다른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하는 것으로 보호자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이런 위안 외에 가족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가완디가 의료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간 현대의학은 관절염·당뇨병·심장질환 등 개별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 가완디는 의료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치료의 외연을 넓혀 노년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관리하는 노인병학(geriatrics)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의사가 일방적으로 질병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환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청하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처가 무엇인지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사는 날까지’와 ‘죽는 날까지’는 동의어다. 결국 책의 제목인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마지막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물음으로 치환된다.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거나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가완디의 지혜를 빌려보는 것도 좋겠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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