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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의견 수렴 거쳐 임금피크제 도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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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민간부문의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한 대책을 내놨다. 노조의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취업규칙은 근로조건, 채용, 해고와 같은 문제를 다룰 때 넘어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을 명시한 사규다. 회사와 근로자 간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율이란 얘기다.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함부로 바꾸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꾸려면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정년연장과 맞물리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나 직무·성과급과 같은 새로운 임금체계 도입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 됐다. 노조는 “일정 연령에 임금을 깎는 것은 근로자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이라며 취업규칙 변경을 막고 있다. 이 바람에 임금피크제 도입이 지지부진하고, 고용시장이 덩달아 위축될 조짐을 보인다. 금융권을 비롯한 각 산업에서 소리 없는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청년 채용 시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정년연장으로 총인건비가 불어나자 기업이 선제대처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취업규칙을 좀 더 쉽게 바꿀 수 있게 정부 지침으로 허용하려는 것일 게다. 정부의 논리는 명확하다. 정년연장으로 근로자가 일하는 기간이 늘어나 생애소득이 많아진다. 이런 혜택을 누리려면 임금피크제와 같은 방식으로 어느 정도는 기업 운영에 협조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야 기업이 숨통을 트고, 고용시장도 활력을 잃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법원 판례도 비슷하니 틀린 건 아니다.

 그래도 일방적이 되어선 곤란하다. 연령에 따라 일률적으로 임금을 깎는 게 근로자에게 불리한 건 사실이다. 고용부도 동의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기업에만 노사 간에 충분한 논의를 거치도록 요구할 게 아니다. 기준과 절차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런 다음 노동계와 원포인트 대화라도 이어가면서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의 잘못된 통상임금 지침으로 인한 혼란과 같은 혼돈의 그림자가 산업현장에 드리워질지 모른다.

 노동계도 반대만 해선 곤란하다.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에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점을 되새겨 볼 일이다. 지난해 11월 고용노사관계학회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90%가 일한 만큼 성과와 능력에 따라 보상받기 원한다고 답했다.

 더욱이 한국노총은 2013년 5월 ‘일자리 협약’에서 임금체계 개편에 동의했다. 2008년 5월엔 ‘고용안정을 위한 임금체계 개선 합의문’에 서명했다. 임금체계를 바꾸는 것이 일자리를 늘리고, 지키는 지름길이란 데 공감했다. 이제 와서 총파업으로 저지한다는 건 명분이 약하다.

 경영계도 뒷짐만 지고 있으면 곤란하다. 실질적으로 근로자 이익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대책을 내놔야 한다. 노동계 설득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노·정 간의 싸움을 지켜보다 떨어지는 과실만 취하려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