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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서울역 고가 공원화 계획은 바람직한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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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논쟁의 초점 서울시가 서울역 고가도로를 폐쇄하지 않고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후 찬반 양론이 비등하다. 고가도로를 보존하면서도 서울 시내에 새로운 녹지와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인식하는 측도 있다. 반면 인근 상인들은 교통대란과 상권 침체를 걱정하며 반대하기도 하고, 인위적 고가도로가 시민친화적 공간이 될 수 없다는 반대 입장도 있다. 찬반 양론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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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거리에 사람 몰려

오영욱
오기사디자인 대표

청계고가도로가 사라지면 교통대란이 일어날 거라고 했다. 상권은 죽는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청계천을 따라 걸어 동대문에 갔고, 그 일대는 항상 북적댔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앞길에 횡단보도가 생기면 지하상가는 망할 거라고도 했다. 기우였다.

 도시 개선 프로젝트는 공공성의 이름 아래 벌어진다. 일부를 제외하면 이들은 모두 시민을 위한다고 표방했고 실제로 그러했다. 조악하거나 키치적인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대개 어느 정도는 봐줄 만했다.

 가령 광화문광장은 섬 같다는 비판을 여전히 받지만 전체가 차로였을 때보다 나아진 것은 확실하다. 서울시청 앞은 잔디를 심은 탓에 광장으로서의 기능에 한계가 생겼지만, 복잡한 교차로였던 시절에 비해 개선됐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에는 으레 생존권·재산권 유지를 위한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란 기존에 있던 것을 뒤흔드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해가 갈린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손해보는 이는 대개 낡은 공간에 자리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문제는 우려했던 지점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도시를 개선하는 프로젝트는 주변의 부동산시장을 들썩이게 하는 경우가 많다. 상권을 활성화시키고 지가를 상승하게 했던 프로젝트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차량 통행 중심의 길에서 보행 중심의 길로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예를 든 경우를 비롯해 인사동의 보행전용도로, 홍대의 걷고 싶은 거리, 가로수길 인도 개선처럼 어느 지역이 걷기 좋은 동네가 되는 순간 그곳의 부동산 가치는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이는 교통대란과 상권 침체를 걱정하며 반대했던 인근 상인이나 주민들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다. 차로가 좁아져 길이 막히고 장사가 되지 않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상권이 활성화되고 임대료가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던 곳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장소의 터줏대감들이 사라져갔다.

 최근 진행 중인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진행 역시 이 부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교통 문제의 비전문가로서 교통 문제가 서울시의 주장대로 해결될 것임을 증명할 능력은 없다. 다만 고가도로가 좋은 설계안에 의해 보행자를 위한 근사한 공원이 된다면 사람들이 기꺼이 찾아가는 동네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굳이 뉴욕의 예를 들 필요도 없다. 걷기 좋은 도시를 지향했던 앞선 계획들이 귀납적으로 이를 설명한다.

 도시 정책은 불가피하게 독단적이다. 공공성은 세부 과정에서 찾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대다수가 동의하는 정책만을 추구했을 때 경제성만을 만족시키는 괴물이 탄생하는 전례를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다. 그 경제성마저 허상이었음이 곧 드러나곤 했다.

 서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논쟁이 보다 건설적이길 바란다. 상인들의 걱정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그들을 살리자는 거다. 그렇지만 지금은 찬반 논쟁으로 인해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뒤로 물러나 있다. 국제 설계 공모 당선안을 두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 남대문시장과 서부역 인근의 재생이라는 큰 목표 아래 이런 부분을 고민하는 것이 비생산적인 반대보다 더 중요하다.

 오늘날 어느 지역의 저평가된 부동산 가치가 급격히 오르게 되는 과정은 사실 무척 단순하다. 대중교통의 수단을 한 가지 늘리고 감춰진 이야깃거리를 찾아낸 후 걷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면 된다. 억지나 과장이 있지 않는 한 그곳은 활성화된다. 서울 시내에서 남대문시장과 서울역만큼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곳은 많지 않다. 걷기 좋은 장소를 만듦과 동시에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미리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오영욱 오기사디자인 대표

고가 공원, 보행 친화 아니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시민들이 아현고가도로의 마지막 모습을 잘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앞으로 서울은 자동차가 아닌 사람 중심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과거 자동차 중심의 첫 상징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지난해 2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현고가 철거 직전 걷기 행사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이 서울역 고가 공원화의 논란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고 본다. 고가도로 철거는 여러 시장을 거치면서도 일관되게 추진돼온 서울시의 정책방향이었다. 고가도로가 사람이 걷는 거리에 그늘을 만들고 시야를 가려 도시 경관을 해칠 뿐 차량 소통에도 뚜렷한 효과가 없다는 측면에서 이 정책은 보행 중심, 사람 중심의 도시와 부합한다. 고가가 철거된 뒤 일각에서 우려했던 교통대란이 없었고, 청계천이 산뜻한 도시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 좋은 예다. 21세기 들어 17개의 고가도로가 철거됐고 서울역 고가도로도 지난해에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논의는 고가 공원이 과연 보행 친화적 정책인가로 좁혀질 수 있다. 지난 세기, 새로운 기술로 고무된 세계는 너나없이 고가도로·공중가로·육교나 지하도 같은 입체 시설을 지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서울은 세운상가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의 구상은 번잡한 거리를 피해 공중에 나무를 심은 가로를 만들어 종묘에서 남산까지 보행로뿐 아니라 녹지까지 연결한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지금 보고 있는 바와 같다. 유토피아를 꿈꾼 야심 찬 공중보도는 사람의 발길이 끊긴 채 방치되다 우범지대로 변해 폐쇄됐다. 건물 사이를 잇는 육교는 철거됐는데도 거리는 거리대로 늘 그늘져 음산하다. 도시에서의 걷기에 대해 오해한 탓이다.

 10년 전 버스 중앙차로 등 서울의 대중교통체계가 획기적으로 바뀌게 된 데는 브라질 쿠리치바시 영향이 컸다. 지하철 건설을 포기하고 버스와 걷기, 자전거를 주된 교통수단으로 삼은 이름난 생태도시다. 이 도시를 우리나라에 소개한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박용남 소장은 쿠리치바의 철학이 ‘사람의 이동은 평면적’이라는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한다고 단언한다. 즉 보행 친화적 도시가 되려면 입체적 시설이 아니라 거리와 같은 높이에서 걸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한 육교를 놔두고 무단 횡단의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위아래로 번거롭게 오르내려야 하는 입체적 이동이 인간 행태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에선 녹지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걷지 않는다. 도시에서의 걷기는 마음먹고 대자연을 찾아가 즐기는 고요한 산책이나 등산과는 다르다. 생활의 공간인 거리의 상점 쇼윈도와 골목길의 번잡함이 사람을 모이게 하고 걷게 한다. 나무와 화초로 가꿔 놓은 ‘걷고 싶은 거리’가 한산한 반면 삼청동이나 경리단길·가로수길 같은 도시적 장소에 걷는 사람이 가득 차 있는 이유다.

 이처럼 세운상가의 실패는 ‘입체’와 ‘녹지’에 대한 환상이 결합된 ‘입체녹지’ ‘공중녹지’의 실패였으며 보행자 전용의 입체시설이 보행 친화적이지 않다는 교훈이었다. 서울역 고가 공원 또한 같은 오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은 어떤가. 하이라인은 기존의 고가철도와 건물이 근접해 별도의 시설을 만들지 않고도 출입이 가능했다. 공원이라고는 하지만 새로 나무를 심기보다 철길 위에 자라던 잡초를 보존하고 보행데크를 얹는 정도로 건축·조경의 개입을 최소화한 경우다. 그 결과 주변과 소통하는 도회적 산책로가 될 수 있었다. 허공을 가르고 있는 서울역 고가도로에 흙을 돋우고 나무를 심는 것과는 다르다.

 박 시장의 말처럼 고가도로의 철거는 입체도시에 매혹됐던 지난 세기 도시정책의 폐기이자 사람 중심의 21세기적 도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에 부합하는 걷는 도시, 보행 중심이라는 큰 틀의 이해 안에서 도시구조 재편과 도심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거기에는 예정대로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