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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방미의 격식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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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석 기자 중앙일보 화백
[일러스트=박용석]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백악관은 다음달 16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한다고 지난 26일 발표했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서 항상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번 방문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뭘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4월 26일부터 5월 3일까지 미국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방미가 여론에 흔들리면 곤란하다. 아베 총리의 방미에 ‘필적’하려는 노골적인 욕구가 중요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정상회담은 실질적인 내용이 중요하지만 격식이나 의전 또한 중요한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아베 총리가 받은 ‘국빈 방문’에 버금가는 융숭한 대접 때문에 많은 한국인의 기분이 상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총리 중에서는 처음으로 상·하원 합동연설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한국은 분노로 반응했다. 나는 아베 총리의 방미 일주일 후에 서울을 방문했다. 거의 모든 한국인이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아 실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베 총리가 받은 지나친 환대에 역정을 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한국의 반응은 ‘아베는 되는데 박 대통령은 왜 안 되는데?’였다.

 가을에 워싱턴을 방문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또한 아주 비슷한 수준의 거창한 대접을 받으리라는 사실도 한국인들을 불편하게 한다. 많은 이가 이를 박 대통령에 대한 미묘한 결례, 일본에 대한 편애, 신흥 강대국인 중국에 대한 특별 대우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방미에 일본·중국 지도자 수준의 격식을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첫째, 미국 정부가 격식을 생략한 실무방문으로 박 대통령을 맞이하는 것은 그에 대한 무례함의 표현이 아니다. 사실 박 대통령은 2013년 5월에 이미 미국을 공식 방문했다. 백악관에서 만찬을 했으며 상·하원 합동연설을 했다.

 같은 나라에서 온 선임·후임 대통령들이 연달아 미 의회에서 연설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데 박 대통령은 2011년 10월에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의회에서 연설했다. 상·하원 합동연설을 끝낸 박 대통령은 마치 록스타 같았다. 평상시에는 위엄 있게 행동하는 하원과 상원의 의원들이 박 대통령과 사진을 찍기 위해 서로를 밀쳐가며 몰려들었다.

 백악관을 처음으로 방문한 국가원수가 그런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 또한 이례적인 일이었다(아베의 경우는 이번이 두 번째 미국 방문이었다).

 둘째,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몇 가지 중요한 결과를 성취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이를 부러워하거나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한·미 관계는 유사한 것들을 이미 성취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미국과 일본이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공개했지만 한국과 미국은 2014년 10월에 전시작전통제권(OPCON)에 대한 협의를 끝냈다. 한·미 양국은 2013년 3월에 새로운 국지도발대응계획(CPP)을, 2011년 10월에는 확장억지력대화(EDD)를 성취해냈다.

 미국과 일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에 필요한 미·일 양자 간 협의를 위해 애쓰고 있지만 서울과 워싱턴은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을 체결했다.

 어떤 한 동맹이 다른 동맹보다 우월한지 아닌지를 따져보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아베 총리가 받은 환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나 정상회담들을 비교하는 것은 정말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충분히 성취한 게 많기 때문에 일본과 관련해 불안감을 느낄 필요가 별로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의전과 격식을 잣대 삼아 다음달의 한·미 정상회담을 바라보지 않는다. 양국 정상의 이번 만남은 이미 격식을 초월한 정상회담이다. 매우 가까운 동맹인 한·미 동맹을 위해 진정으로 서로 좋아하는 지도자들끼리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의식은 필요 없다. 대신 정상회담의 분위기는 격식이 절제된 가운데 친밀해야 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허례허식이 아니다. 오히려 양국 정상이 기후변화, 무역 문제, 의료보장제도, 핵안보와 비확산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 진짜 가까운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을 때는 값비싼 그릇을 내놓지 않는다. 흉금을 털어놓는 친밀한 대화가 더 중요하다.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에게 내가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일러스트=박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