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황금사단 싸우지도 않고 도망가더니…

중앙일보

입력

“라마디를 수일 내로 되찾을 수 있다.”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지난 24일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주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공세에 함락된 안바르 주의 라마디를 탈환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했다. 지난 3월 티크리트 탈환의 주역으로 이란군 장성이 이끄는 시아파 민병대이 주력이 됐다. 이 지역이 수니파 심장부란 점에서 그간 작전에도 배제됐던 이들이다. 2만여 명이 라마디 인근에 집결했다. 이라크 언론들은 시아파 민병대 사령관들이 지도를 보면서 작전을 논의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전열을 정비한 이라크 군경과 안바르 주의 친정부 수니파 민병대도 참가했다.

이들 연합군은 25일 라마디로부터 20㎞ 남쪽에 있는 아타시 지역을 되찾았다. 또 IS가 라마디에서 100㎞ 떨어진 바그다드로 진격하는 걸 막기 위해 곳곳에 지뢰를 매설했다. 현지에선 “대반격 작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미군도 공습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IS도 전력을 보강했다. 24일 오후 무장대원 수십 명을 라마디로 실어날라 시내 건물 곳곳에 배치했다. 한 주민은 “세 대의 트럭에서 무장한 IS 대원 40여 명이 뛰어내리는 걸 봤다”고 했다. 라마디 진입로에 지뢰와 급조폭발물(IED), 부비트랩 수천 기를 설치했다.

연합군 내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미군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왕정 국가들의 공습과 이란의 지원에도 IS가 쇠락하기는커녕 기세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라마디 참패 원인을 두고 미국과 이라크·이란 정부가 서로 손가락질했다. 티크리트 전투에서 시아파 민병대를 이끈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 쿠드스군 카심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미군은 IS 극단주의자들의 라마디 침공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미국의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이 전날 “이라크군이 싸울 의지가 없다”며 “라마디의 이라크군은 숫자에서 IS에 뒤지지 않았고 실제로는 훨씬 많았지만 IS에 패배했다”고 말한 걸 앙갚음한 발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의 정예 황금사단이 라마디에서 IS와 싸우지도 않고 도망갔다고 전한 바 있다. 사드 알하디티 이라크 총리실 대변인도 “카터 장관이 잘못된 정보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이 알아바디 총리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곤 “이라크군이 지난 18개월간 보여준 엄청난 희생과 용기에 감사한다”며 “이라크의 반격 작전 준비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미군 공습 무력화한 IS ‘폭탄 차량’ 공격=미국 언론들은 IS가 자살 폭탄 차량으로 공격해 라마디 시가지의 방어선을 뚫었다고 전했다. ABC 방송은 국무부 당국자를 인용, “라마디 시가지 공격 때 IS는 자살 폭탄차량 30대를 동원했다”며 “이중 10대는 (168명이 죽은)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 때와 파괴력이 비슷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폭탄을 실은) 덤프 트럭과 불도저는 철판을 덧대 총격과 유탄발사기 공격을 막아냈다”고 전했다. 라마디 전투에 참여한 쿠르드족 민병대 페슈메르가의 장교는 “(라마디에 IS 병력이 도착한지) 수시간 만에 24대의 폭탄차량 공격이 벌어졌고 다음날엔 30대가 공격해 왔다” 고 현지 매체인 러다우에 전했다. 미국은 지난해 9월 F-22 랩터와 토마호크 미사일 동 고가의 첨단무기를 동원해 IS 공습을 시작했지만 막상 지상에선 IS의 원시적인 차량 폭탄 공격에 라마디를 내줘야 했다.

런던·워싱턴=고정애·채병건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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