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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때 KLO의 활약 알리고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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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원자력연구소 창설멤버인 이창건(75)씨는 우리나라 핵공학 분야의 원로 중 한 사람이다.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이씨는 약 20년간 이 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한국원자력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원자력 분야의 연구 경력만 50년이 가깝다. 지금도 한국전력기술기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런 그에겐 학자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특이한 경력이 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적의 후방을 침투해 정보수집과 교란작전을 벌였던 스파이부대의 기획참모였다.

KLO(Korea Liason Office)라는 이름의 이 부대는 1948년 한국정부 수립과 더불어 철군했던 미국의 극동군 사령부가 한반도에서의 정보 수집활동을 위해 조직해 운영했던 비정규 첩보조직이다. 한국군도 미국군도 아닌 국적불명의 이 부대는 군대와 무기는 떠나지만 눈과 귀는 남겨두고자 했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신경세포 역할을 했다.

흔히 '켈로 부대'라고 불리던 이 부대는 한국전의 발발과 중공군의 참전 등 전쟁의 주요 고비를 정확히 파악해 그 성가를 높였다. 한국전쟁 발발 후엔 북한의 후방에 침투, 특수전 임무를 담당해 연합군 전력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작전 때 팔미도 등대를 확보해 수백척 아군 전함에 안전한 뱃길을 알려준 전공으로도 유명하다.

이씨는 전쟁이 발발한 50년 부산에서 이 부대 요원인 친구 형의 권유로 합류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는 뛰어난 영어 실력 덕분에 나이가 어린 데도 참모부서의 간부로 요원들의 침투 활동을 기획하고 지휘하는 일을 했었다. 53년 10월 이 부대가 해체되고 북에 남겨진 동료들을 구해오려는 비공식 활동이 계속된 55년까지 이 부대의 핵심요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대변하는 데 이 짧은 경력이 이후 50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펴낸 'KLO의 한국전 비사'라는 책은 그 시절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이씨는 이 책에서 그와 KLO부대 대장 중 하나였던 최규봉씨, 그리고 이 부대 요원들의 경험담을 정리했다. 최씨가 참가한 팔미도 작전을 비롯해 이 부대가 벌였던 작전들의 전말이 소개됐다.

"2000년 초였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 요원이 술집에서 자신의 무용담을 떠벌인 것을 옆에 있던 할리우드 영화 기획자가 듣게 돼 그 이야기를 영화화하자고 제의했다고 합니다. 그 요원이 이런 사실을 한국에 전했고 최규봉 선생이 누군가 KLO의 역사를 제대로 전해줄 만한 책을 내야 한다고 권해 이 책을 쓰게 됐지요."

그는 약 4년 동안 옛 동료들의 증언과 자료를 모았다.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 작업을 서둘렀다고 했다.

"KLO부대는 약 5000명의 대원이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임무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 나라 이 체제가 이 같은 희생 위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요즘 세대들이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KLO요원들의 바람입니다."

글=왕희수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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