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경제협력 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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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한간의 경제협력 제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여러차례 제의를 해왔으나 북한측이 무답으로 아무런 진전이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제의가 주목을 끄는것은 한층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다 줄곧 폐쇄주의만을 고집해오던 북한의 경제정책이 최근들어 개방화로의 전환을 시도하고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이같은 개방화로의 정책선회는 더이상 버텨나갈수없는 폐쇄경제의 한계를 드러낸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측의 보다 적극적인 반응을 기대해볼만 하다.
또 수재용이라는 명분을 달았지만남북한물자가 처음으로 휴전선을 통과했다는 사실도 큰 변화다.
북한의 수해물자제공제의가 정치적책략임이 뻔했음에도 선뜻 받아들인것도 어떤 계기로든 상호교류의 시작으로 삼자는 의도에서였다.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남북한간의 경제협력이란 무엇이든지 좋으니 서로 팔고 사고하는 간단한 일부터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아까운 외화써가며 남의 나라에 가서 어렵게 사다 쓸것없이 이제부터라도 남북한이 서로 넉넉한 물건들을 싼값에 팔고 사자는 이야기다.
이것이 제대로되면 한걸음 더 나아가서 기술제휴나 합작투자를 통한 본격적인 경제협력도 못할리 없다.
당장 생각할수 있는것이 북한에 많은 석탄이나 철광석등의 광산물을 우리가 사오고 우리는 북한이 모자라는 공산품등을 파는 식이다.
석탄이나 철광석은 북한에 공급여력이 있고 우리는 수입해다 쓰고있다. 우리 공산품은 TV·자동차·섬유등이 생각될수 있으나 최종 소비재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북한이 받지않으려 할것이다.
한국산의 좋은 소비재가 북한에서 유통·소비되는 사태는 남북한의 경제격차를 단적으로 드러내게되므로 경제적 이득이 된다하여 선뜻 받아들일수 없기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한국의 최종소비재보다 표가 안나는 공업중간재등을 택할 가능성이 많다. 북한의 경제규모는 한국의 5분의1에 불과한데다 기술수준이나 산업구조면에서도 전형적인 후진국수준에 머물러있다.
철광석의 경우 남한의 25배에 달하는 30억t의 풍부한 매장량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조강능력은 오히려 우리의 3분의 1도 못된다. 석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의 수출이 연 2백50억달러수준인데 반해 북한은 14억달러. 한햇동안의 수출물량이 우리의 한달물량에도 못미치는 영세규모다. 그나마 수출의 40%가 1차산품들이다.
국민생활수준과 직결되는 자동차나 TV·섬유류, 그밖의 생필품등의 생산규모나 품질쪽의 격차는 더 심하게 벌어진다.
이처럼 양측의 격차가 크다는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합영법등 개방체제로의 점진적 전환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남북경제협력을 어렵게 하는 장애요인이 될수있다. 북한은 남북한의 격차가 그대로 드러나는 거래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협력은 사람의 교류가 따라야 하는데 북한이 자신있게 폐쇄사회의 문을 열것으로는 보기 힘들다. 남북경제교류의 전도를 경제적필요성만으로 낙관못하는 것이 바로 이때문이다.
우리정부의 기본입장은 경제협력이라는 채널을 통해 실익을 제공함으로써 북한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불러들이자는것이다.
일이 잘 풀려서 그들이 남북경제회담에 응한다해도 당장 구체적인 교역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휴전선이 그어진후 처음으로 민간경제인들까지 참여해 상호교역의 가능성을 따져본다는것 자체만해도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될만하다.
어쩌면 막다른 골목에 와있는 북한경제의 어려운 현실이 우리가 제공하겠다는「실익」을 쉽사리 외면하지 못하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근에 드러내고 있는 개방화의 제스처도 사실 30여년간 소위 폐쇄경제와 폐쇄정책을 고집하던 북한경제로서는 상당한 변신을 의미하는것이다.
이같은 배경에는 중공이 최근 벌이고 있는 근대화의 성과에 크게 영향을 입은것으로 보인다.
소련이 못마땅해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중공의 층고를좇아 개방화로의 변신을 도모하는것은 그러지 않고서는 달리 활로를 찾을 방법이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개방화의 움직임이 남북관계에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체제는 정제적실익보다 정치적 이해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 북한낙후 경제를 돕는다는 인상을 극력 피하려할것이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진행될 폐쇄체제의 붕괴가 경제쪽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고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확대될수 밖에 없다는 점이 주목거리다.
동독도 외국빚을 갚기위해 작년에 서독으로부터 3억8천만달러의 정부차관을 빌어썼고 금년들어 또다시 3억달러를 빌어갔다.
신병현부총리의 제의내용처럼『남북한이 이념과 제도를 초월해서 힘을 합치는 방법』은 하찮은 것일지라도 서로 팔고사는 간단한 상거래부터 실현시키는 일이 그 첫걸음일 것이다.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할수없는 상태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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