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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팍압력…목졸리는「마르코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7일 마닐라시민들의 대규모 반정시위는 예상과는 달리 격렬한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
시위군중을 전원 체포하겠다던「마르코스」대통령이 하루만에 위협을 철회하고 군부에 대해서는 데모대에 가까이 가지말도록 접근금지령을 내림으로써 일단 사태악화를 막았다. 시위군중과의 층돌이 몰고올「체제 붕괴」를 두려워하고 있는것이 분명하다.
그러나「아키노」암살사건조사위원회의 최종 조사보고서 발표가 임박한것과 때를 맞춰 「하이메·신」추기경이 대「마르코스」비난에 앞장서고있다.
그동안 정관자세를 보였던 일부 경제인들도 이 대열에 낌으로써 반정부시위도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여 필리핀정국은「폭풍의 눈」으로 등장하고 있다. 미국이 필리핀의 정정불안을 이유로 이나라에 있는 군사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든가 IMF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금융기구가 필리핀에 대해 여러가지 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차관을 주지않겠다고 공언함으로써「마르코스」정권의 숨통을 죄어가고 있다.
미국이 필리핀에 주둔하고있는 군사기지의 이전을 검토하겠다는 것은 지금까지「마르코스」대통령이 자주 사용해오던「미기지 폐쇄」카드에 대한 역습으로 볼수있다.「마르코스」대통령은 자신의 정권유지에 필요한 지원이 끊긴다면 미군사기지폐쇄도 불사하겠다고 미국을 위협했다.
사실상 미국은 필리핀내 군사기지를 계속 확보하려고 대단한 모험을 걸어왔다.
필리핀의 정치적 안정을위해「마르코스」를 위협도 했다가 어르기도 하고 그래도 반응이 나타나지 않자「레이건」의 필리핀방문을 취소하거나 공공및 상업차관제공을 지연시키는 방법까지 동원했으나 필리핀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이 정말 필리핀을 포기할수 있을것인가. 필리핀에 있는 클라크공군기지는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중 가장 큰 것이다. 만약 이곳에 기지가 없다면 미국은 동남아나 인도양·서태평양에서 주도권을 상실할지도 모른다.
역시 필리핀에있는 수빅만 해군기지도 그 중요성으로보아 대치가 불가능하다. 적합성여부를 따지지 않은채 단순히 이 기지를 사이판및 티니안으로 옮긴다고 가정할 경우 이전비용만도 20억달러라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본다면 미군의 필리핀기지 이전검토실은「마르코스」대통령의 독재를 경고하는「적색」경보로 여겨진다. 그러나 미국의 기지포기설은 필리핀 내에서의 쿠데타를 유발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이 염려하는것은 필리핀. 쿠바혁명의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카스트로」가 쿠바의 정권을 장악하기전에 소부대 게릴라전을 펼쳤던것처럼 필리핀의 공산게릴라들이 그 세력범위를 점차 확대시키고있는데 마국이 적지않이 놀라고 있다.
필리핀 국방성관리들도 비공식적으로는 자국내에 군사적·정치적 개혁이 실시되지 않는한 2∼3년내에 공산게릴라에 의해 국가가 전복될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를 검토한바 있는데 이제 미행정부가 이 시나리오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69년 모택동주의자들의 게릴라전전개에 의해 형성된 필리핀공산게릴라신인민군(NPA) 은 현재 필리핀 전농초치역의 20%를 통할하고있으며 동구권무기로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들은 73개성에 활동거점을 헝성하고 있다.
정부군들은 총과 탄약을 훔쳐 게릴라에게 팔아넘기는 상식이외의 일들이 벌어지고있다.
공산게릴라의 발호와 함께 필리핀이 직면한 또하나의 당면문제는 경제파탄이다. 세계 각국이 물가안정을 구가하고 있는 마당에 필리핀만은 지난7월까지 인플레 상승률이50%에 이르고 있으며 기업도산으로 2·4분기중 30여만명이 강제휴업을 당했다. 정부가 예측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2%이나 실제는 이보다 더 내려갈것으로 추측되고있다.
최근의 반정부시위에 경제인들이 대거 참여한것은「마르코스」대통령의 족벌자본주의에대한 불만도 크게 작용하고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외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가해지고있는 압박은「마르코스」대통령이 견뎌내기가 힘겨울 정도의 심각한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음이 틀림 없다.

<최철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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