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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아랍’을 다룬 유대인 스필버그의 새 영화 ‘뮌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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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가 이번에는 '독일'보다 훨씬 민감한 '아랍'을 건드린다.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 때 발생한 테러 참사를 정면에서 다룬 영화 '뮌헨'을 직접 연출한 것이다. 정치적인 측면은 물론 상업적인 면에서도 대단한 '모험'이자 '도박'이다. 그래도 감독은 밀어붙였고, 결국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올해 아카데미에서도 '뮌헨'이 상당 부문 노미네이트될 것이란 후문이 벌써 떠돈다.

미국 전역 개봉을 이틀 앞둔 5일, LA 할리우드에 위치한 스필버그 감독의 제작사 '앰블린 엔터테인먼트'를 찾았다. 좌석이 40개쯤 되는 사내 극장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내내 무척 조심스러웠다. 관련 비밀 서류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고 연출 심정을 밝힌 바 있다. 제작진은 "벌써 (영화에 대한) 메일이 쏟아지고, 여기저기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아랍계보다 오히려 유대계 관객들이 불편하게 느낀다"는 얘기도 꽤 들렸다.

뚜껑을 연 '뮌헨'의 첫 장면은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Inspired by real events)'는 큼직한 자막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과 픽션, 역사와 현실, 우리와 너희, 삶과 죽음 사이에서 줄을 타며 팽팽하게 오간다.

감독이 겨냥한 표적은 뮌헨올림픽의 인질극 참사가 아니라 그 이후의 숨겨진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 '검은 9월단'의 배후를 응징하기 위해 꾸려진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암살단'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아랍과 이스라엘, 스필버그 감독은 섣불리 어느 한쪽에 발을 담그지 않는다. "이쪽이냐, 저쪽이냐"고 몰아치지 않는다. "테러는 미친 짓이다"라는 식의 식상한 훈시도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테러리스트나 정보기관원, 아랍인이나 유대인이란 '명찰'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얼굴과 일상에 카메라를 바짝 들이댄다. 그래서 감독의 중립적인 입장에도 영화의 메시지는 그의 어떤 전작보다 강렬하고 직접적이다.

압권은 '검은 9월단'의 배후로 지목된 11명을 5명의 이스라엘 암살단이 차례로 제거해 나가는 과정이다. 암살단이 노리는 테러리스트들은 이웃에게 따뜻한 말과 농담을 먼저 건넨다. 어린 딸과 아내도 있고, 지키고 싶은 가족과 조국도 있다. 그들은 테러리스트들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 테러리스트들이 가진 상처의 넓이와 고통의 깊이는 자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조국과 정의를 위해 총을 들었던 이스라엘 암살단은 자신들 역시 또 다른 테러리스트가 돼가고 있음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스필버그 감독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이야기 흐름에 정교한 드라마와 숨죽이는 액션을 빈틈없이 버무린다.

이 영화의 출연배우는 무려 200명에 달한다. 세계 곳곳에서 캐스팅된 이들이다. 캐스팅 담당자는 "우리가 공유하는 역사의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일이라 배우들의 조화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주연인 이스라엘 암살단의 리더 아브너 역은 '트로이'에서 헥토르 역을 맡았던 에릭 배너가, 모사드 간부 역은 '샤인'의 제프리 러시, 폭탄 전문가 역은 '증오'(97년)로 칸 영화제 감독상까지 받았던 마티유 카소비츠가 열연했다.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헐크'를 보면서 이미 에릭 배너를 점찍어 뒀다"며 "그의 눈 속에 숨겨진 따스함과 힘, 그리고 두려움은 이번 역할을 위한 것"이라고 캐스팅 배경을 설명했다.

이슈와 논쟁의 중심에 선 영화인 만큼 주연배우 배너의 심정도 남달랐다. 6일 LA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작품이다. 그래서 영화는 '당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나'만 보여준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입장에 따라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건 또 자연스러운 일이다" 라고 말했다.

'뮌헨'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암살단'일에 회의를 느낀 아브너와 상관이었던 에브라임이 뉴욕에서 만나 논쟁을 벌인다.

"우리가 뭐든 이룩하긴 한 겁니까. 표적을 없애면 더욱 악랄한 이들이 그 자리에 대신 앉을 뿐"이라는 항변을 에브라임은 "손톱은 계속 자라니까 깎아주는 것"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등을 돌린 채 돌아선다. 아무도 없는 빈자리, 저 너머로 30년 뒤 9.11 테러로 무너질 세계무역센터가 보인다. 뮌헨올림픽 이후 3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계속되고 있는 '제2, 제3의 뮌헨'이다.

LA=백성호 기자

*** 바로잡습니다

1월 10일자 23면 '표적은 바로 우리 모두의 심장이었다' 제목의 기사 중 "골든그로브 감독상"이라는 표현은 "골든글로브 감독상"이 맞기에 바로잡습니다. 골든글로브상(Golden Globe Award)은 1943년 설립된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에서 우수 영화와 TV 드라마에 주는 상입니다. 감독상, 여우 주연상, 음악상 등 25개의 부문이 있으며 이름 그대로 금색 지구본으로 장식된 트로피를 줍니다. 아카데미상의 전초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63회째를 맞는 올해 시상식은 17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LA 베벌리힐스에 있는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NBC 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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