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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극비리 추진 … '사실상 추방'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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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8일 속초로 귀환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관련 직원들이 한국 선박인'한겨레호'에서 짐을 내리고 있다. 현장 경비 인원 등 57명의 남은 인력이 전원 귀환했다. 속초=박종근 기자

북한 경수로 부지에서 일하던 한국 근로자들의 완전철수는 대북경수로 건설사업의 종료선언이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일 3국의 재정.법률적 청산절차 협의만 마무리되면 함경남도 금호지구(신포시 일대)의 경수로 현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렇지만 혹한의 날씨 속에 관리인력 한 명 남기지 않은 채 건설현장을 서둘러 빠져나온 배경을 둘러싼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 인적 끊긴 금호부지=8일 철수한 인력은 2003년 12월 공사 일시중단 조치 이후 현장을 지키며 시설.장비를 유지.보존해 온 사람들이다. 중단조치 직후 120명이 남아 있었으나 지난해 12월 사업중단기간마저 만료되자 추가로 귀환하고 57명만 남았다. 현장 경비를 맡아온 질서유지대가 18명으로 가장 많고 전기설비와 청소를 담당한 관리업체 인원이 14명이다. 또 한국전력 7명, 합동시공단 관리인력 5명, 식당과 병원이 각 5명과 3명이다. 경수로 사업을 추진해온 국제기구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미국인 직원 한 명과 한국인 4명도 돌아왔다.

이들의 철수로 여의도의 3배 면적에 달하는 260만 평의 북한 경수로 부지에 외부인은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1997년 8월 부지공사 착공 이후 한때 남측 근로자 717명과 북측 97명, 우즈베키스탄 576명 등 모두 1400여 명으로 북적이던 현장에 망치소리와 인기척이 사라진 것이다. 거대한 돔형 콘크리트 시설은 녹슨 철근을 드러낸 채 중단됐다. 또 총 455억원 상당의 크레인과 굴착기 등 중장비 93대와 트럭.버스 등 190여 대의 차량, 철근 6500t 등 자재도 주인을 잃은 채 방치돼 있다. 공사기간 7년에 연인원 1000만 명이 동원되는 46억 달러짜리 국제 프로젝트가 한반도의 거대한 흉물로 남게 된 것이다.

◆ 꼬리 무는 의혹들=급작스러운 철수조치에 대해 정부는 경수로 공사의 재개 전망이 사라진 마당에 건설인력이 체류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수로 사업을 추진해온 국제기구인 KEDO와 북한이 지난해 12월 7일부터 이틀간 북한에서 협상을 하는 등 협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국자는 "북측도 사업이 종료되는 마당이라면 굳이 KEDO 인력이 잔류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인력철수 사실을 극비리에 추진해 왔다. 강원도 속초와 금호 부지 간 선박운항 계획이 알려지면서 언론이 취재에 들어간 지난 4일 마지못해 철수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철수 근로자들의 신변안전을 위해 선박이 우리 영해에 들어오는 시점까지 엠바고(보도시점 유예)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북한과 합의하에 이뤄지는 인력 철수라고 설명하면서도 '신변안전'을 우려하고 있는 데 대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정부가 철수배경 설명 과정에서 현지 식량사정까지 거론하고 있는 점은 사실상 추방 형태로 서둘러 나온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 관측자는 미국이 최근 달러 위조지폐 문제 등으로 북한을 압박하면서 6자회담의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북측이 KEDO 철수를 대응카드로 꺼낸 것이라는 분석도 하고 있다. 경수로 사업을 자기들 주도로 완전히 종료시켜 놓고 이를 명분으로 영변의 흑연감속로 재가동을 정당화하겠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이럴 경우 북.미 간의 긴장은 한껏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영종 기자<yjle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북한 경수로 일지

▶1994.10.21=북.미 제네바 합의

▶1995.12.15=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북한 경수로 공급협정 체결

▶1997. 8.19 = 부지정지공사 착공식

▶1998.11. 9=KEDO, 경수로 비용 분담 결의안 서명

▶2001. 9. 3=원전 본관 기초굴착 착수

▶2002. 8. 3=제1호기 콘크리트 타설 공사

▶2002.10.16=미국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계획 시인"

▶2002.11.14=KEDO, 대북 중유공급 중단

▶2003. 1.10=북한, NPT 탈퇴선언

▶2003.11. 6=북한, 부지현장 장비반출 금지

▶2003.11.21=KEDO, 경수로사업 1년간 중단 결정

▶2005. 7.12=한국, 대북 직접송전안 발표

▶2004.11.26=KEDO, 경수로사업 추가 1년 중단 결정

▶2005.11.22=KEDO집행이사회, 사업종료 논의

▶2005.12. 8=북한, KEDO 인력 철수 요구

▶2006. 1. 8=금호부지서 인력 전원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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