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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보완적 경제협력 가능성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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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북한의 수재물자가 휴전선을 넘었다. 물자가 건네진 형식은 적십자사간의 재해구호물자 수수였고 물량도 양측의 전체 생산량에 비하면 극히 소량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6·25동란이후 남북간에 이루어진 최초의 공개적 물자교류란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북한측 수재물자의 수수가 한차례의 일방통행으로 끝나고 말 것인지, 이번을 계기로 길이 틜지에 대해선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동란이후 남북한은 각기 5차례씩이나 상대방에 대해 경제원조와 협력을 제의했으면서도 지금까지는 한번도 어루어지지 않았다.
남북간의 근본적 장벽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에서 이번 수재물자가 왔다해서 앞으로 물자가 오고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그러나 남북간에 물자가 오고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일단 보인 것이다.
이번 물가수수는 과거 해방 후 6·25동란까지 약5년간 남북한간에 제한적이나마 여러 형태의 물자교류 이후 처음이다.
해방직후 미소 공동위원회의 협상실패로 미소군정으로 들어가 남북왕래가 중단되었으면서도 38선을 넘나드는 국내 상업형태의 민간거래, 속칭「3·8무역」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당시 미군정당국은 일반인의 자연스런 상행위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가하지 않았고, 처음엔 이를 막았던 소련도 남북한 민간물자교역이 늘어나자 47년5월 이를 정식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종전에는 소련경비병과 북한보안 서원의 눈을 피해 행해졌던 물자교역이 이때부터는 부쩍 늘어났다. 미군 당국자료에 따르면 48년 한해동안의 교역량이 약1백만 달러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월경 거래 이외에 연안교역까지 합하면 실제 교역량은 훨씬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북에서 내려온 물자는 시멘트·카바이드·천일염·가성소다·소다회·마대·비누·설탕·비료·기계류·수산물 등이었고, 남에서 올라간 것은 페니실린·다이아진·등 외국산 약품, 전기용품·생고무·자동차부속품·광목·면사·쌀·유황 등이었다.
그러나 북한측이 미제권총·카빈 등 무기를 가져가고 남로당의 정치 공작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조선상사 등 대남 물자교류 전담상사를 설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49년5월 공식 적인 남북교역이 금지되고 말았다. 밀무역은 그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남북한간 특수거래의 다른 하나는 45년8월부터 48년5월까지의 대남송전과 이에 대한 대상물자 지급이었다.
해방당시 한반도 발전설비용량 l백81만 kw중 1백67만5천kw가 북한에 편중돼 있었다. 남한에서 볼 때 북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 일은 필수불가결한 지연간 교류였다. 47년10월까지 월간 13만kw씩 송전되다가 미소 공동위원회의 성과가 북측에 불리하게 되면 서는 8만kw로 줄었다가 남한의 5·10선거 나흘 후인 48년5월14일 단전됐다.
남한에 보낸 전기의 댓가로 북측은 발전기·전선·변압기·자동차타이어·생고무·윤활유·전구 등을 요구했으나 이들 물자는 남한에도 부족하여 전구 이외에는 다른 물자로 대체, 지불했다.
3·8무역과 대남송전 등 경제교류와 아울러 「3·8우편」으로 불리던 남북 우편물 교환도 46년3월 미소군정 당국의 합의로 실시돼 6·25동란 1주일전까지 4년여 동안 계속됐다.
양측은 각각 기차로 우편물을 싣고와 개성 역장실에서 교환, 인수인에게 전달했다.
이번 수재물자의 교환이 이루어졌다 해서 이와 같은 남북물자 교환까지 쉽게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최소한 북한에 재해가 발생할 경우 한국측이 물자제공은 제의할 때 북한이 거부하기는 어려워졌다.
따라서 당분간은 남북물자교류가 재해위문형식을 띨 가능성이 많아졌다.
북한은 또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합영법」(합작 투자법)을 제정하는 등 잇단 대의경제개방 제스처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30년간의 통제체제와 폐쇄정책 및 자주자립을 집요하게 고수한 북한으로서는 현저한 정책수정이다.
남북간의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제구조를 생각할 때 한국이 과거 여러 차례 제의한 경제협력에 대해서도 북한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한국은 석탄·철광석 등 원자재를 해외로부터 많이 수입하고 있고, 북한은 각종 원광석· 석단 등 1차 산품이 수출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또 북한이 개방경제를 지향한다면 어차피 기술·자본 등을 도입해야하고 한국은 그것을 줄 수 있는 입장이다. 상호보완적 경제협력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동독이 지난해 서독으로부터 3억8천5백만 달러의 정부차관을 받아 외채상환 등에 사용하데 이어 지난 7월에도 3억 달러의 차관을 받기로 한바있다. 그런가 하면 경제력이 월등한 서독에의 의존도를 늘리며 동독 대외무역의 40%를 「내독교역」에 의지하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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