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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메마른 디지털 시대 책이 '감성의 가습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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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러스트레이션=강일구 ilgoo@joongang.co.kr

작년 1~3분기 한국의 가구당 월 평균 책값 지출이 1만원도 안 된다는 통계 보도 내용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책값을 1만원으로 쳐도 이 액수가 한국인의 일상 지출에서 차지하는 크기는 외식비의 24분의 1, 통신비의 13분의 1, 술값의 5분의 1, 담배 값의 2분의 1이다.
일본의 경우 작년 9월에 조사된 가구당 서적 등 인쇄물 구입비는 한국의 3.8배라고 한다. 전체 소비지출로 보면 한국 가구의 서적비 비율은 0.5%이고 일본은 1.5%다.

많은 이들이 책값 지출의 미미한 비율에 놀라는 눈치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월 평균 외식비 24만원, 통신비 13만원, 사교육비 15만원 등을 부담하고서도 책 살 돈이 남아 있었던가? 이번 통계와는 관계없는 얘기지만 손전화 등장 이후 우리 청소년들은 한 달 용돈의 거의 전부를 통신비와 게임 비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영화, 스포츠 관람 같은 데 쓰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책 살 돈이 없고 돈이 있어도 책은 잘 사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작년 한 해만도 수만 종의 책이 수천만 부 출판되어 나왔는데 그 많은 책들은 누가 다 사주었는가? 나라와 공공도서관이? 어림없는 소리다. 통계는 전국 평균이다. 그러니까 한국에는 책 열심히 사보는 소수의 인구 따로 있고 책과는 담쌓고 사는 대다수 인구 따로 있다고 해야 뭔가 설명이 된다.

그 독서인구가 지금 조금씩이라도 늘고 있는지 더 소수가 되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자료들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독서인구의 전반적 감소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독서 강국으로 알려진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도 독서인구의 감소 경향은 뚜렷하다. 그런데 무엇이 다르냐면, 다른 나라들은 독서 위축을 '사회적 위기'로 파악하고 민과 관이 열심히 대책을 세우는 데 반해 우리는 거의 태평으로 손 놓고 있다는 점이다. 문학단체, 출판사, 교육단체들도 독서 위기니 문학의 위기니 열심히 말은 하면서 독서 인구 키우는 문제에는 기이할 정도로 무감각하다. 문학의 경우 남북작가회의 같은 사안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학 인구 늘이고 책 읽는 사회 만드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

독서 위축이 어째서 사회적 위기인가? 두 가지만 말하자. 첫째, 생각하고 판단하는 시민의 능력 없이는 정치 민주주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숙고와 판단의 능력에서 나오고 이 능력의 가장 강력한 물줄기는 책읽기에 있다. 그러니까 시민의 독서력 위축은 사회적으로 '정치적 위기'를 조성한다. 둘째, 잘 읽고 잘 쓰는 능력, 평생학습의 능력,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상상하는 능력은 시민의 경제활동에 필요한 기초 중의 기초다. 책읽기는 그 기초 능력의 가장 유효한 물줄기 가운데 하나다. 그 물줄기에 의한 능력 개발과 지식공급이 빈곤해진다는 것은 경제차원에서도 '위기'다.

남을 이해하고 타인의 삶과 운명을 나의 삶에 연결 짓는 능력은 공동체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윤리적 능력의 토대다. 책읽기가 이 토대 능력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윤리적 능력은 따뜻한 가슴의 능력이고 가슴을 여는 정서적 능력이며, 책읽기는 그 정서적 힘을 길러주는 강력한 토양이다. 시카고 철학자 마사 너스봄은 그 정서적 능력을 '시민적 능력'이라 규정한다. 문학작품이 시도하는 것은 나와 타인의 연결이고 내가 나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나 바깥의 어떤 더 큰 것과 연결되게 하기다. 이 점에서, 문학을 읽는 행위나 문학교육의 사회적 의미는 단순 교양인 아닌 '시민' 형성의 차원에 있다.

사람의 윤리적 감성과 관계해서는 철학자 알프리드 화이트헤드의 말이 늘 기억할만하다. 청소년의 윤리적 능력은 '위대한 것에 대한 직관'에서 길러진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이 직관은 도덕책이나 수신 교과서로는 절대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 직관의 원천은 전기, 자서전, 신화, 모험담, 소설 같은 '이야기책'이다. 아이들에게 이야기책을 쥐어주고 이야기를 경험하게 하라, 그러면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그들은 위대한 것에 대한 감각을 자기 힘으로 얻고 터득한다고 화이트헤드는 충고한다.

지금 우리 청소년 문화를 휩쓸고 있는 게임, 디지털 영상기기, 컴퓨터, 인터넷 같은 것으로 숙고의 능력과 똑똑한 판단력을 가진 시민, 윤리적 감성의 인간, 접촉과 이해와 연결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길러낼 수 있을까? “꿈 깨라”다.

우리 사회는 지금 10년째 디지털 시대의 '환몽'에 잠겨 디지털이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과 컴퓨터의 기술적 산업적 유용성은 물론 탁월하다. 그러나 적어도 자라는 세대의 인간적 능력과 시민적 능력 형성에 관한 한 디지털 문화는 극히 위험하고 파괴적이다. 미국 쪽 연구에 따르면 컴퓨터는 깊은 학습의 능력과는 관계없다는 결론들이 나오고 있다. 컴퓨터를 거의 쓰지 않은 학생들이 컴퓨터에 노상 매달려 사는 학생들보다 학습능력과 성적이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누구도 디지털의 적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디지털 문화의 우상화에 빠져 그 물결에 대책 없이 쓸려가서도 안 된다. 지금 사회적으로 가장 긴요한 것은 독서인구 길러내기다. 그러나 책읽기는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손쉬운 일도 아니다. 독서 인구를 키우는 데는 책읽기의 즐거움과 소득을 스스로 경험하게 하는 일 이상의 현명한 방법이 없다. 정책과 대책은 그 자극의 방법에 관한 것이다.

도정일 (문학평론가·경희대 영어학부 교수)

일러스트레이션=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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