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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나의 세대」가 오고있다|중앙일보 창간19주년「한국인의식」조사를 마치고…오 택섭 <고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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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했을때 성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믿고 있는가. 그리고 자녀나 본인의 배우자를 선택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까? 84년도 중앙일보조사 결과에 따르면「노력」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믿는 사람이 전체응답자의 반수를 넘고(52·9%)「능력」이 43·5%였다. 또한 배우자의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것은 「건강」(53·1%)과 「성격」(48·5%) 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응답자의 인구통계적 속성으로 나누어 보면「성공」의 경우 생활수준이나 연령·성별에 따른 차이가 없으며 도시지역과 농촌지역 사이에도 차이가 없다. 다만 교육수준에 따른 차이가 약간 나타나는데 대졸자의 경우 성공요인중「능력」을 높게 평가 (54·1%) 하며 상대적으로「노력」에 대한 응답률(49·4%)은 전체평균보다 낮은 편이다.
배우자선택에 관한 문항에서도 소득수준과 같은 경제적 요인이나 도농간·성별간에도 「건강」과「성격」을 우선적으로 꼽는 정도가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응답자의 학력이나 연령에 따른 차이가 나타나는데 대졸응답자의 경우「건강」보다「성격」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43·2% 대 58·3%), 20대 청년층의 52·8%가 배우자의「성격」을 결혼의 제1조건으로 삼고있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남녀노소, 빈부의 정도, 거주지역등에 거의 차이없이 개개인이 가지고있는 내재적인 자산, 즉 노력 능력·건강·성격등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이와같이 성공의 조건이나 배우자의 선택에 관해서 개인의 내재적요인이 크게 부각되고 학벌·가문·인맥 운·재력등 환경적 요인이 대조적으로 낮게 평가된 점은 주목할만한 결과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통제의 소재를 외적요인 보다는 내적인데서 찾으려는 경향은 응답자의 사회의식 내지 윤리관에서도 갈 나타나고 있다. 그 예로 부동산투기나 금융사고에 대한 원인을 물어본 결과 82년도 조사결과와 비교해 볼때 정치(31·1→16·3%)와 경제(19·1→13·2%)라는 어떤 제도적 부조리는 50%에서 30%선으로 줄고 개인의 욕심(22·7→30· 9%)을 더욱 근본적인 이유로 들고 있다.
성공의 조건으로 재력보다는 능력을, 결혼대상자의 가문보다는 건강을 강조한다는 이번 조사결과가 과연 응답자의 진실한 의견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반영하고있는가의 문제는 사회조사의 제한점을 논의할때 자주 거론되는 문제이기도하다. 응답자는 조사자와의 상호작용과정에서 본인의 의견을 왜곡 또는 과장하는 사회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회조사의 근본적 결함을 배제하고 조사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금년도의 결과는 국민의식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행동의 주체가 남(타인)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며, 어떤 행위의결과에 대한 책임이 환경이나 제도등 외적요인이 아니라 주관적 판단과 노력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한인간의 행위가 타인의 판단이나 힘에 얼마만큼 의존하는가에 따라 크게 외제적 인간과 내제적인간의 두가지 인간상을 발견하게 된다. 외제적인간은 자신의 행복이나 재난이 자신을 둘러싼 외부적인 힘에 의해 운명적으로 결정된다고 믿는다.
이와는 반대로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동원하여 스스로 환경을 통제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사회적 보상을 얻을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내제적 인간이다.
밝고 건강한 사회일수록 환경통제의 소재를 자기 자신에서 찾으려는 내제적인간이 많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상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여건이 성숙한 발전을 이룰때 가능한 것이다.
미국사회를 예로 들자면 60년대의 월남전쟁과 이로 인한 학원소요가 전 미국인, 특히 걺은 층을 깊은 좌절의 수령에 몰아 넣었는데 이에 대응하여 미국인은 정치환경 그 자체를 변질시킴으로써 자신을 재난으로부터 구원코자했던 것이다. 히피운동이나 과격한 행동주의도 결국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환경을 바꾸려드는 외제적 발상의 산물이다. 월남전이 끝나고 국민이 이성을 되찾게됨에 따라 70년대에는 자신의 행복을 자기 자신에게서 구하는 새로운 의식이 싹트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뉴욕타임즈지가 사설에서 논평한 것처럼 나(我)의 세대(Me Generation) 의 출현을 예고한 것이다. 「나의 세대」란 인간이 모든 사물과 사건을 자신에 기준하여 생각한다는데서 비롯된 것으로서 자기중심적이며 자애의 경향이 강한것이 특징이다. 「나의 세대」의 인간은 결혼과 육아를 기피하며 새로운 영웅을 갖지 않은채 자기자신으로부터 영웅을 찾으러한다.「나의 세대」가 이기적이 아닌 건전한 개인주의를 추구한다고 볼수 있겠으나 반면에 무정부적인 개인주의 사회를 초래할지도 모를 위험성을 안고있다.
이번 중앙일보의 조사가 국민의 정치·경제·사회의식을 얇고 광범위하게 다루고있어 제한된 설문 문항만 가지고서는 과연 우리국민의 인간상이 외제적인데서 내제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관한 확정적인 결론은 내릴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성공」과 「배우자」에 관한 문항은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미동적 경향을 간접적이나마 추론케 한다.
우리나라도 물질주의가 만연된 산업사회에 접어들게 됨에 따라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의식구조에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올바로 파악하는 일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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