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오바마의 고민…이라크 지상군 파견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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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겠다는 ‘오바마식 전쟁’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9월 시작된 미군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IS는 17일(현지시간) 이라크의 라마디를 함락하며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한때 50만명이 거주하던 라마디는 안바르주의 주도이자 바그다드에서 110㎞ 떨어져 있어 이라크 수도로 향하는 관문이다. IS는 하늘의 미군과 지상의 이라크군을 모두 돌파하며 바그다드 진격까지 노릴 수 있게 됐다.

이는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하지 않는 대신 이라크군을 훈련시켜 IS를 분쇄하겠다던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에 타격을 준 것이다. 지난 2월 존 앨런 미국 대통령 특사는 “IS를 향한 지상전을 위해 이라크 병력을 준비시키고 있다”며 모술 탈환전을 예고했다. 그러나 모술 탈환은커녕 라마디가 함락됐다.

이에 손을 담그지 않고 전쟁에 이기겠다는 오바마식 전쟁의 한계라는 언론의 지적이 잇따른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어중간한 대책이 시리아 문제는 다음 대통령에 넘기면서도 이라크 내 IS 세력에 타격을 주리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라마디 함락으로 이런 낙관론이 의심스럽게 됐다”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지 병력을 훈련시키려는 미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군의 허약함이 노출됐다”며 “지난해 여름 이라크 정규군이 모술에서 궤멸됐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라크 지역 경찰은 수백 명씩 라마디에서 도망쳤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여름 IS가 모술을 공격했을 때 수적으로 압도적 우세였던 이라크군 3만여명이 패주했다. 이번에는 이라크 병력이 미군이 제공한 전투차량인 험비를 타고 라마디를 빠져 나갔다.

라마디는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이 밀집했던 이른바 ‘수니 트라이앵글’의 거점으로, 2004∼2007년 미군 1000여명이 전사한 미군의 무덤이었다. 애초부터 전투 의지가 떨어지는 이라크군 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사태가 악화되자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3000여 명의 시아파 민병대가 라마디 인근에 집결했다. 이란의 호세인 데흐칸 국방장관이 예고도 없이 이라크를 전격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3월 IS로부터 전략 요충지인 티크리트를 탈환할 때처럼 이란이 지지하는 시아파가 이라크군을 대신해 수니파인 IS와 맞붙는 양상이 또 벌어지게 됐다. 이는 역내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해 미국의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왕정 국가들을 더욱 불안하게 할 수 있다.

백악관은 18일 전략 변화는 없다며 ‘오바마 스타일’을 고수했다. 에릭 슐츠 백악관 대변인은 “라마디 함락으로 차질을 빚었지만 이라크 정부군을 도와 라마디를 탈환하겠다”며 “전략 변화는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화당 등은 오바마 대통령을 몰아세웠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이라크에서의 실수에 관한 한 내가 비난할 사람은 조지 W 부시가 아니라 오바마”라며 “오바마는 이라크에서 철군해선 안 된다는 군 지휘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미군을 철수시켰다”고 비난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미군 델타포스가 IS 고위 인사를 사살한 것은) 라마디 함락에 비하면 지엽적인 것”이라며 “더 많은 사람을 (이라크) 지상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런던=채병건·고정애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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