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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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동·서독의 왕래가 물건과 돈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이로니컬하다. 동족의 분단을 눈앞에 두고 사람보다 물건이 먼저라니, 그런「비인도적」인 일이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전후 분단국의 문제를 푸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비즈니스 라이크」 (사무적)한 방식임을 바로 동·서독은 입증하고 있다.
「빌리·브란트」서독 전수상은 그것을 독일통일을 위한 소보(Kleiner Schritt)의 한 걸음으로 비유한 일이 있다. 독일 민족은 일찍이 분단의 문제를 한목에 푸는 거보(Grpsser Schritt)주의보다 소보주의가 더 현명하다는 암묵의 합의가 있었던 것 같다.
동·서독 사이에 인적 교류의 문을 열기로 한 것은 1946년 10월29일이었다. 그러나 미소 냉전은 이것을 현실적으로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1947년1월18일 미소사이에 체결된「민덴약정」은 동·서독의 물품교역을 실제로 가능하게 했다. 미소는 동·서독이「상호의존적인 관계」라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이런 조치들은 모두 양독의 정부수립 이전이고, 베를린 장벽은 그 훨씬 뒤인 1961년의 일이었다. 아뭏든 동·서독의 교역은 유일하게 독일민족의 아이덴티티(실체) 와 동질성을 유지하고 서로 손상하지 않는 하나의 백본 되고 있다.
지금 양독의 교류는 세 가지로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 자본의 교류. 말이 교류지 실제로는 서독이 동독에 차관형식으로 연간 10억 마르크 정도 꾸어주고 있다. 흥미있는 사실은 GG(정부대 정부)베이스 아닌 서독의 도이치뱅크가 동독의 은행에 빌려주는 형식이다. 동독정부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배려다. 올해의 액수는 9억5천만 마르크. 그것도 10년 분할상환에 런던은행 금리 플러스 1%의 저리로.
둘째 물자교역. 동·서독은 서로수출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공급」이 수출이고, 「현품도착」이 수입이다. 동·서독은 서로 외국이 아니라는 발상이다. 물론 관세도 없다.
바로 지난해부터는 서독 쪽의「출초」가「입초」로 바뀌었다. 서독의대동독「공급」이 73억 마르크, 동독의「현품도착」이 76억 마르크로 3억 마르크 입초.
서독의 반응이 걸작이다. 관민이 모두『당연하다』는 것이다. 서독경제가 동독만 못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자신감의 산물이다.
셋째 동·서독 합작투자 서독의 폴크스바겐사(자동차생산)는 금년 2월 동독에 엔진공장을 세우기로 그쪽과 합의를 보았다.
이런 교류는 우리라고 못할 것이 없다. 우리 한적이 북적 물자를 받아들이기로 결단한 것은 민족통일의 대계를 내다본 영단이다. 정말 우리 한적은 어려운「소보」를 먼저 한발 내디뎌 세계의 칭찬 받을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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