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관심병사 출신이 총질하고 통제관은 도망갔다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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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제 발생한 예비군 훈련장 총기 사고는 진상이 밝혀질수록 ‘예견된 인재(人災)’ 쪽으로 기울고 있다. 군은 출산율 저하 등으로 병력자원이 줄어들자 예비전력 정예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예비군 훈련을 강화하면서도 여전히 훈련 관리·통제는 허술했던 게 이번 참사의 근본원인이다.

 우선 현역 당시의 관심병사 자료가 전산화돼 동원훈련 때 이를 참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음에도 현장 훈련부대에서 이를 무시했다. 위험한 실탄 사격 훈련 때만이라도 과거 관심병사였던 예비군에게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관리·통제를 했었다면 재앙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범행을 저지른 최모씨는 현역 시절 중점 관리 대상인 B급 관심병사로 군대 적응을 못해 입대 6개월 만에 중대를 옮겼으며, 군 입대 전후로 여섯 차례나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전 써놓은 유서나 친구에게 10여 차례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낸 사실까지 인지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현장 훈련부대에서 몇 번만 컴퓨터를 조회해 봤더라면 최씨를 다른 예비군들과 똑같이 관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총기 고정 관리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사격 훈련장에 총기걸이가 설치된 건 이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범행을 미리 계획한 예비군이 총을 총기걸이에 연결하는 시늉만 해도 확인 없이 훈련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려면 뭐 하러 사대에 총기 고정장치를 설치했다는 말인가. 병력자원이 줄면서 우선적으로 예비군 부대의 병력부터 뺐기 때문에 통제인력이 부족했다는 것도 이유가 안 된다. 다른 훈련의 인력을 줄이더라도 실탄 사격 훈련만큼은 충분한 통제인력을 갖췄어야 한다.

 무엇보다 통제관과 조교들이 도망가기 바빴다는 중간수사 결과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각 훈련부대는 우발상황 발생 시 통제관과 조교들이 제압하도록 돼 있다. 아무리 비(非)무장이라 해도 범인이 동료 예비군 얼굴에 조준사격을 가하고 마지막 10번째 총알로 자신의 목숨을 끊을 때까지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달아났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사고 훈련장은 서울 도심에 있으며 매일 사격훈련이 벌어지는 곳이다. 자칫 범인이 총을 들고 시내로 잠입해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난사하는 경우를 상상하면 아찔하기 이를 데 없다.

 군 당국은 서둘러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군 내엔 자살 시도 경력이 있거나 성격 결함 등으로 가혹행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A·B급 관심병사가 2만8000명이 넘는다. 이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건 잘못이지만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한 해 동원훈련을 받는 270만 명의 예비군 속에 끼워 넣는 건 언제 또 벌어질지 모르는 대형참사에 눈을 감는 또 하나의 범죄다.

 실탄 사격 훈련장의 통제인력을 확충하고, 통제관과 조교들부터 철저히 교육시켜야 한다. 또한 관심병사 출신 예비군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훈련장마다 주먹구구인 훈련관리지침도 통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