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통의 한·일 관계, 오죽하면 경제계가 나설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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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제 의미심장하면서도 다른 기류의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도쿄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재로 집단자위권 행사 허용을 핵심으로 한 11개 안보 관련 법 제·개정안이 각의를 통과했다. 서울에서는 양국 재계 인사 등 300여 명이 모여 경제협력과 민간교류 강화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번에 처리된 10개 개정안과 ‘국제평화지원법안’은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위한 법률적 지원장치다. 군사대국화를 향한 아베 정권의 집요한 노력이 또 한번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일제 침략의 아픔을 겪은 주변국 국민으로선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런 우려 속에서도 외교부는 “일본 측에서 ‘집단자위권 행사 시 당사국 동의가 필요한 건 당연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며 반발 강도를 낮추었다. 하지만 자위대의 한반도 파견 시 한국 측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영역국가 동의’ 규정과 관련, 석연치 않은 데가 있다. 타국의 후방지원을 다룬 ‘중요영향사태법’엔 이 규정이 있지만 집단자위권 관련 법인 ‘무력공격사태법’ 개정안엔 빠져 있는 까닭이다. 편법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거꾸로 ‘한·일경제인 회의’가 양국 간 경제 및 민간 협력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낸 것은 꽉 막힌 한·일 관계에 가뭄 속 단비나 다름없다. 예년과 달리 올해에는 참석자 대부분이 끝까지 회의 자리를 지켰을 만큼 양국 경제계 인사들은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양국 간 협력 대상을 자유무역 촉진 등 경제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문화·청소년 교류 등 민간 분야에서의 화해 노력까지 포함시켰다.

 2년이 훨씬 넘게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았을 만큼 한·일 관계는 복합골절 상태다. 하지만 과거에도 한류 등 문화 교류가 밑거름이 돼 양국 관계가 좋아진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따스한 ‘소프트 파워’를 작동시켜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녹이자는 건 불통 정국을 푸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