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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에 “GOP 근무 때 다 죽이고 자살할 걸 후회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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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3일 예비군 동원훈련장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모(23)씨의 군복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서 A4용지 두 장짜리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내일 사격을 한다.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박증으로 되어간다”고 적혀 있다. 또 “GOP (근무) 때 다 죽여버리고 자살할 걸 기회를 놓친 게 후회된다”는 섬뜩한 대목도 있다. 이어 “가장 고통스러운 건 화상당했을 때와 화생방 했을 때”라며 “내가 죽으면 화장 말고 매장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유서에 대해 “외국에서 일어나는 묻지마 범죄랑 비슷한 심리를 보이는 것 같다”며 “자신의 열패감이 세상의 차별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최씨는 B급 관심병사였다. 최씨의 군 동료들은 그가 군 복무 당시 군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지난 2012년 1월 군에 입대한 최씨는 이듬해 경기도 연천 소재 육군 5사단 GOP(일반 전초)에 배치됐다. 최씨와 함께 자대생활을 했던 A씨는 “최씨가 일처리가 빠릿빠릿하지 못해 선임들로부터 많이 혼났다”며 “이 때문에 힘들어하고 자주 고민을 털어놨는데 곧 관심병사로 분류됐다”고 말했다. 군대 동기 B씨도 “최씨가 선임에게 혼나는 일이 잦아 입대한 지 6개월 만에 중대를 옮겨 다른 보직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최씨 빌라 거주 주민 김모씨는 “최씨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웃옷을 벗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거나 가끔 소리를 질러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3남1녀 중 막내인 최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1년 뒤 군대에 갔다. 2013년 10월 전역 후 최근까지도 별다른 직업 없이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20여 년 전 지병으로 숨졌고 누나와 형이 출가해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다.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진 서울 내곡동 강동·송파 예비군훈련장 인근은 종일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훈련장 인접 부대에서 가수 싸이(38·본명 박재상)가 6시간짜리 보충훈련에 나왔다가 개인 사유로 사고 발생 20분 전 조기 퇴소한 사실도 확인됐다.

 서울삼성병원으로 이송된 윤모(24)씨는 이날 오후 9시37분쯤 과다출혈 등으로 사망했다. 윤씨의 형(25)은 “사고 날까봐 자동차학과에 다니는 동생에게 차를 잘 안 빌려준 게 너무 미안하다”며 주저앉아 울었다. 윤씨의 어머니는 “너무 착한 아이인데 어떡하느냐”며 오열했다. 또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입원중인 황모(22)씨의 어머니는 “어젯밤 꿈에 아들 뺨에 우담바라 꽃이 피는 걸 보고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했는데 뺨으로 총알이 들어갔다”며 울었다.

 주부 강모(51)씨는 “아들을 군대 보내고 마음 졸인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예비군훈련도 안심하고 보낼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군 당국은 이날 총기 난사 현장에 있었던 예비군 540여 명을 상대로 사건 당시 상황을 조사했으며 14일 중 퇴소시키기로 했다.

손국희·김민관·박병현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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