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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설명하기'의 어려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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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러다가 외국 신문을 접하고 나서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신간 서평이 실리는 주말판 신문을 자주 읽게 되는데, 거기에는 영문학에 정통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이 수두룩했다. 아니, 외국에는 초등학생들이 없다는 말인가. 물론 거기에도 초등학생들은 있었지만, 어른들을 위한 주말판 신문까지 읽을 필요는 없었으리라. 그때 나는 알았다. 신문이라는 게 어른들의 읽을거리라는 걸. 놀라웠다. 그런데 도대체 이 사실이 왜 놀라웠을까?

중국에서 생활할 때다. 뉴스를 보면 죄다 아름다운 이야기만 나왔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군.관.민'이 협동해서 재해에 대처했다는 식의 뉴스들이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그 어떤 재난도 이겨낼 수 있다는 얘기니 참으로 이해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그게 어른들의 읽을거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어른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그 모든 사실들에 '회의'하는 사람이다. 웬만큼 살아봤다면 그 정도는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때로 아무리 '군.관.민'이 협동한다고 해도 재해에 대처할 수 없는 것, 그게 인생이니까.

나는 소설도 어른들의 읽을거리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세계는 명쾌하지 않다. 행복은 고통과 함께 찾아온다. 때로 그 고통의 강도가 행복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마담 보바리의 인생은 불행인지 행복인지 분간할 방법이 없다. 누구나 한 번은 죽을 줄 알면서도 불을 향해 뛰어들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초등학생에게 이런 얘기를 할 수는 없다.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등학생이고 우리는 어른이다.

한국 소설보다 외국 소설이 더 많이 팔리는 건 한국 소설가들이 독자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TV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소설을 읽히겠다면, 쉽게 쓰라는 말이다. 역시 "왜 길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을 상대로 소설을 써야만 하는가"라는 말은 차마 못했다.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청소년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들을 상대로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왜냐고? 어른들이 애처럼 굴면 누구 말마따나 '나라가 망할 수도' 있으니까.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게 쓰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잘못하면 초등학생의 수준으로 쓰게 되니까. 줄기세포 파문이라는 게 꼭 그런 꼴이다. 신문이 어른들의 읽을거리라면 확실한 얘기만 써야 한다. 그게 정말 중요한 문제라면 생명공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얘기라도 써야만 한다. '가짜' '조작' '바꿔치기' 같은 단어로 모든 문제를 설명하는 한, 우리는 영원한 초등학생들이다. 꿈 많은 초등학생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초등학생들이 이 세계를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스터리'다. 나는 외계인 등에 끌리는 초등학생들의 몽상을 인정하지만, 어른들까지 그런 식으로 세상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정말 그래서는 안 된다. 어렵더라도 쉽게 설명하려고 들지 말자.

<약력> 대산문학상.동인문학상 수상. 소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등.

김연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