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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를 바로알자〃|생가소재 전북 장수군 부녀회서 캠페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금 전북 장수군에서는 정사나 야사의 뒤안길에서 고아가 되어버린 주논개에 대한 「바로알기 운동」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논개님은 열사이지 의기란 당치가 않습니다』
장수군 부인협찬회장 박경희씨(49)는 주논개에 대해 임진왜란 때 기생의 신분으로 진주 촉석루 의암에서 왜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했다고만 알려져 있지, 올바른 신분이나 성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고 안타까와했다.
장수군교육청 고두영장학사는 논개가 기생으로 분한 것은 왜병들이 벌이고있던 승전연에 참석키 위한 수단이었을 뿐 삶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논개는 1574년 9월3일 전북 장수군 계내면 대곡리 주촌부락에서 서당훈장으로 있던 주달문과 밀양박씨 사이에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논개라는 이름은 경상도 방언으로「개를 낳다」는 뜻으로, 논개가 갑술년·갑술월·갑술일·갑술시에 4갑술의 사주를 타고 났다하여 아버지 주달문이 지어준 이름이다.
슬하에 자녀가 없어 걱정하던 차에 태어난 논개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13살 때 아버지가 죽자 비극이 시작됐다.
숙부 주달무가 당시 지방의 토호에게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아 넘길 것을 계획, 뒤늦게 이사실을 안 박씨부인이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피했으나 고발을 당해 관아에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장수현감 최경회는 논개 모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 무죄방면, 오히려 내아에서 지내도록했는데 현감의 부인이 죽자 부실로 들어앉았다.
선조25년 임진란이 일어나자 최현감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전임, 논개도 따라 나섰다.
그러나 1593년 6월29일 진주성이 왜병에게 짖밟히고 최병사도 전사하자 논개는 열 손가락에 옥가락지를 끼고 기생으로 가장, 7월7일 촉석루 의암에서 벌이고 있던 왜병들의 승전연에 참석, 20만 왜병을 거느린 왜장 모곡촌륙조에게 접근, 그가 술에 취하자 허리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 짧은 일생을 마쳤다.
그때 논개의 나이 겨우 19세. 논개의 의거는 조정에서 의암이라는 시호를 내려 치하했고 1846년 헌종 12년에는 장수현감 정주석이 장수읍 장수리 현재의 군청사앞 남산에 의암사와함께 생향비를 창건, 뜻을 기렸다.
74년 장수군은 남산에 건립했던 의암사를 현재의 두산리로 옮기고 경내외 정화사업으로 2백평 규모의 여성수련장, 동상건립, 우회도로개설과 경내확장 및 사당앞 두산저수지를 개발하고 편의시설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생가지 주촌부락엔 주촌국교를 이전, 그 자리에 생가를 복원하고 학습장건립·진입로 확장 및 포장, 주변 조원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부인협찬회장 박경희씨는 새마을 부녀회와 대한적십자사 부녀봉사대 등 군내 부녀클럽서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늘어나는 참배객 들에게 『논개님이 열사라는 것과 성씨가 주씨이며 생가지가 주촌 부락이라는 것 등을 소개하고있다』면서 경내정화를 위해 좀덜이 쌀 모으기와 푼돈 모으기로 경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수=모보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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