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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채춤에 10만 관중 열광|LA올림픽 16일간의 열전이 막내리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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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로스앤젤레스=본사 올림픽 특별취재반】『아듀 LA. 서울에서 다시 만납시다』-.
12일 하오 8시35분(한국시간 13일 상오 10시45분) 어둠이 깃든 메모리얼 콜리시엄의 성화는 서서히 꺼지고 석별의 아쉬움을 담은 작별의 노래 『올드 랭 자인』이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가운데 제23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대회의 폐회를 선언합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사마란치」 위원장의 폐회선언에 이어 16일간 LA하늘에 펄럭이던 올림픽기는 내려지고 성화가 꺼진 어둠 속에 전광 게시판은 『SEE YOU IN SEOUL(서울에서 만납시다)』이라는 글자를 또렷이 아로새겼다.
폐막식을 알리는 팡파르연주. 이어 가장 먼 거리인 42.195㎞를 달려 메인 스타디움에 들어서는 마라톤 우승자 「카를로스·로페스」(포르투갈)에 대한 10만 관중의 환호와 경의가 그 동안의 뜨거웠던 각종 경기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손기정씨 이름 새겨져>
「사마란치」 위원장은 마라톤 우승자「로페스」에게 금메달과 영예의 월계관을 직접 씌워주자 우뢰 같은 박수가 메인 스타디움에 울렸다.
동시에 전광판에 역대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의 이름이 소개되었으며 맨 처음 베를린올림픽의 영웅 손기정씨의 이름이 새겨졌다.
9번째의 올림픽출전 중 가장 많은 금·은·동메달을 획득한 한국선수단이 모습을 나타내자 스탠드에선 대형 태극기가 물결쳤고 교민들은 『코리아』를 외치며 자랑스런 우리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어서 진행된 3개 국가에 대한 경의표시는 전통의식에 따라 올림픽 발상국 그리스의 국가가 맨 처음 연주되고 23회 올림픽 개최국인 미국의 『성조기여 영원하라』, 그리고 88올림픽 개최국 대한민국의 국기가 게양되며 애국가가 메인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조국이 자랑스럽고 한국인임이 가슴 뿌듯한 순간이었고 교민들은 감격에 울먹이며 애국가를 합창했다.

<한미 어린이 선물 교환>
최초의 올림픽 공식기 「앤트워프·플래그」는 「톰·브래들리」 LA시장으로부터 「사마란치」 IOC위원장에게, 그리고 다시 다음 올림픽개최지 시장인 염보현 서울시장에게 전달되었다. 한미 양국의 어린이 12명은 우의의 선물을 교환했고 그 순간 그라운드에서는 서울시립무용단의 화려한 부채춤이 뉴욕 할렘극장 무용단과 함께 어우러졌다.
하오 8시35분, 서서히 줄어들던 성화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그라운드가 완전히 어둠에 덮이는 순간 하늘을 가르는 형형색색의 레이저광선의 윤무와 불꽃놀이….
예술에 응용될 수 있는 현대과학의 모든 것이 동원된 축제가 펼쳐졌다.
가장 미국적인 개막식 축제를 보여주었던 LA올림픽은 폐막식도 브로드웨이 풍의 버라이어티쇼였다.

<우정 넘친 평화의 장>
2백여명의 브레이크 댄싱 팀의 발랄한 율동, 최고 인기가수 「라이어닐·리치」의 출연으로 그라운드의 선수·스탠드의 관중은 한데 어울려 춤추며 노래했다.
50분간에 걸친 젊음의 축제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오로지 우정이 넘쳐흐르는 평화의 장(장)이었다.
하오 9시30분 『올드 랭 자인』의 은은한 가락이 모두의 가슴에 석별의 아쉬움을 심을 때 선수들도 팔을 끼고 어깨동무를 한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코리아에서 또 만납시다.』 잡은 손에 굳은 약속들이 오고 갔다.

<8㎞밖서도 불꽃 봐>
○…폐막식 불꽃놀이에는 모두 3천발의 불꽃이 25가지 형형색색의 수를 놓았다. 메인 스타디움에서 쏘아 올린 불꽃은 8㎞밖에서도 볼 수 있도록 높이 솟아올랐다.
수제품인 이 불꽃의 제작비는 50만달러로 일본의 남가주 상공인협회·남가주 기업연합회·일본 선박협회 등이 공동 출연했으며 일본선박협회장 「사사가와·로이찌」씨가 대표로 기증했다.

<10만여명 입장 못해>
○…폐막식 입장권은 50달러짜리가 6백50달러로 장외 거래되었다. 최고수용능력 9만8천명인 메모리얼 콜리시엄 주위엔 미처 입장권을 사지 못한 관중 10만여명이 익스포지션 파크 등에 빈틈없이 들어앉아 「밤하늘의 쇼」를 즐겼다.
레이저광선의 현란한 윤무와 형형색색의 불꽃놀이는 이곳 공원에서도 즐길 수 있어 공원잔디차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작경비만도 50만불>
○…폐막식 스테이지를 꾸미기 위해 2백여명의 부문별 전문가들이 4주간의 작업을 거쳐 완성했으며 메인 스타디움으로 옮기는 데만도 40대의 트럭이 동원됐다. 제작경비는 50만달러.
주요 시설물로는 60명의 오키스트러 좌석, 2만5천 갤런의 물을 담을 수 있는 3개의 수중댄싱 수조(수조), 14개의 발연(발연) 시설, 72개의 비행기 착륙 등 설치, 6개의 레이저빔 발산기, 5∼6㎞의 조명장치, 1백명의 시설 조작원들이 사용할 임시 컨트롤센터 등이 포함됐다.

<리치, 새 폐막노래 불러>
○…자신의 골든디스크 힛송 『올 나잇 롱』 등 팝송과 2백명의 브레이크댄서들과의 합동공연으로 12분간의 단독스테이지를 가진 「라이어닐·리치」는 올림픽 폐막을 위한 새 가사를 『올 나잇 롱』에 붙여 불렀다.
개·폐막식 총감독 「데이비드·울퍼」는 금년 초 「라이어닐·리치」가 올림픽 기금모금을 위한 자선파티에 무료 출연했고 올림픽기간 중에는 선수촌을 찾아가 선수들에게 즐거운 음악을 들려주는 등 올림픽에 대한 사랑과 헌신적 공헌에 감동. 그를 폐막식 스테이지 싱거로 선택했다고 설명.
「리치」 자신은 『2억5천명의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 기회는 내 생애 최고의 영광』이라고 기쁨을 표시.

<「남한」표기 전광판에>
○…LA타임즈가 실수를 저질렀던 대한민국 국호 영문표기가 폐회식 전광판에도 나타났다.
88올림픽 개최국의 국기게양과 애국가가 울릴 때 전광판에 표기된 국호는 「리퍼블릭·오브·사우드코리아」로 또 한번 「사우드」를 집어넣었다.
LA타임즈 사건도 있었던 만큼 한국관계자들이 신경을 썼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서울 오륜 출전, 3연패>
○…10종 경기 2연패를 한 영국의 「델리·톰슨」은 T셔츠에 『서울에서 만납시다』고 쓰여진 것을 입고 폐막식에 참석, 기자인터뷰에서 왜 그 셔츠를 입었느냐는 질문에 『나는 서울올림픽에도 출전, 3연패를 하겠다는 의지』라고 대답.

<대형 헬리콥터가 견인>
○…폐막식의 하이라이트로 우주인의 등장. 레이저 광선의 현란한 윤무와 형형색색의 불꽃놀이가 그라운드를 수놓은 가운데 창공에서는 헬리콥터에 견인된 UFO(우주선)가 나타나 매머드 콜리시엄은 작은 우주를 방불케 했다. 이어 클로시엄 정면에 우주인이 모습을 드러내 『올림픽 정신이 한곳에 모여 장관을 이룬 이 역사적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먼길을 왔다』고 인사.
이 순간 스탠드를 가득 메운 10만여명의 관중은 흥분으로 환호했고, 창공에서는 온갖 불꽃놀이 폭죽이 터지면서 에어쇼를 펼쳐 폐회식은 절정을 이루었다.

<조 결승전서 허리 다쳐>
○…LA올림픽에서 가장 눈물겨운 시상 장면이었다.
11일 하오 애나하임 컨벤션센터에서 베풀어진 레슬링 자유형 68㎏급의 시상식에 나선 한국의 유인탁의 모습은 모든 관중의 가슴을 짜릿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미국의 「앤드루·레인」을 사투 끝에 힘겹게 누른 유는 라카룸으로 돌아가다 복도에서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유는 이날 상오 터키의 「세커」와의 조 결승에서 허리를 크게 다쳤으나 이를 무릅쓰고 결승에 출전한 결과 상처가 더욱 악화된 것이다.
휠체어로 시상대까지 온 유는 임원들의 부축을 받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 시상대에 겨우 올랐다.
태극기가 오르고 애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부축을 받고 서있던 유는 눈물을 마구 흘리며 꽃다발로 얼굴을 가리는 등 괴로운 표정을 감추려고 애를 썼다. 응원 나온 교민들은 물론 임원들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도핑검사 후 진통제를 3대나 맞고 겨우 기자회견장에 나온 유는 『사랑스러운 딸 은미(2)가 보고 싶다』고 말머리를 열었다.
판정시비에 대해서는 『이겼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 결승에는 거의 못나올 정도로 아팠으나 오직 금메달을 따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뛰었다면서 『오는 88년 서울올림픽에도 출전,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코리아" 함성 진동>
○…롱비치의 엘도라도공원은 코리아의 함성으로 진동했다. 5천여 관중은 남녀부 우승국가인 미국과 한국을 경축, 『USA』와『코리아』를 번갈아 합창, 경쾌한 밴드연주 속에 완연한 푸른 잔디 위의 축제를 펼쳤다.
2백88발을 쓰는 경기 중 마지막 9발을 남기고 서향순이 중공의 라이벌 「리링잔」을 9점차로 앞서 대세가 움직일 수 없게되자 3백여 교포응원단은 장내 아나운서의 수차에 걸친 주의에도 더 이상 흥분과 기쁨을 참지 못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코리아 만세』를 외쳐댔다.
4일 동안 양궁경기장은 최고인기의 금진활로 인해 줄곧 코리아무드에 휩싸였으며 이날 제2의 금진활인 서향순이 드러매틱한 역전극으로 최고 정상에 올라서자 미국관중들도 아낌없는 박수와 환성으로 명궁 히로인을 축하해 주었다.
반면 동메달에 머무른 김진호는 웃음을 잃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의의 축하와 위로에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 한국 임원들은 『너무 애썼는데 정말 안됐다』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올림픽사상 한 종목에 2개의 태극기가 오른 것은 양궁이 처음이어서 교포나 체육회임원들의 감회는 더 컸다.

<월계관 씌우자 열광>
○…노태우 SLOOC(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위원장, 이영호 체육부장관, 정주영 대한체육회장 등도 모두 대한 아마복싱연맹 김승연회장 등 복싱임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격려했다.
○…시상식에서 김회장이 신선수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자 한국 응원단은 『코리아』를 외치며 열렬히 박수갈채를 보내 미국일색인 장내는 처음 「코리아」 물결로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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