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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싸워선 안되겠다는 생각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조계증 이성철 종정 사퇴철회의 변>
불교 조계종 이성철 종정 이종정직 사퇴성명과 함께 자춰를 감춘지 2O여일만에 가야산 백련암으로 다시 돌아와 주석했다.
선사의 아난야인 백련암 염화실 뜰앞 인공연못속을 노닐던 흰 연꽃 송이들은 정오의 따가운 한여름 햇볕이 내리쬐자 고개를 수면에 푹 떨구었다.
그러나 미소를 머금은 연꽃의 한낮 시름과는 달려 산허리를 휘감은 백운청산의 산사정경은 그대로였다.
이종정은 훌훌 털고 떠나버리는 운수예자의 행각으로부터 돌아온지 이틀만인 6일하오 온종도들의 사표철회 촉구를 받아들인데 이어 종단 대표권을 행사, 해인사전국 승려 대표자 대회가 뽑은 신임 오연원 총무원장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오총무원장의 임명장 수여에 앞서 잠시 시간을 비집고 선사를 만나봤다.
- 그동안 어디에 계시다 돌아오셨습니까?
△ 그건 비밀이야. 총단이 시끄럽게 된데는 종정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돼 숨어버렸제.
- 원로·중진회의까지 직접 소집해놓고 회의날짜 이틀전에 돌연 사퇴성명을 냈던 배경은?
△ 분열과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원로·중진스님들을 모아 젊은 승려들의 제도개혁 내용을 반대하면 분명「싸웅판」이 벌어질게 뻔했어.
- 사퇴성명 후 백련암을 떠나있을 때의 심경은?
△ 아무 생각 없었어.
- 종정직 사퇴결심을 번복하게 된 동기는?
△ 원로회의와 전국승려 대표자 대회의 「종정사표 반려결의」를 존중해서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종단을 위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종정자리를 물러설 용의가 있어요.
무슨 명분을 내세워도 종정자리를 탐해서 도로 주저앉은 글이 돼 버렸어.
내가 사퇴를 안해야 종단안정이 된다니 물러날 수도, 눌러 앉을수도 없는 딱한 사정이란 말야. 원래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맡았지만 내가 종정자리에 앉은게 후회 막급일 뿐입니다.
내 죽을 때 우리 백련암 아이들한테 『절대 종정하지 말라』고 유언할 작정이오.
- 갑작스런 사퇴 성명은 공인의 도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많았는데요.
△ 당시 싸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그 길이 최선이라고 했다가 일이 그리된게지.
- 오히려 종정스님의 사 성명이 소장 승려들의 독주를 견제한 승려대회 개최의 촉진제가 된 고단수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 난 정치는 몰라. 그저 조계종이 더이상 싸움하는 집단이 안돼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내가 봐도 조계종단은 싸움판 집단이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야 오죽하겠어요.
- 일부 소강 승려 중심의 비상 종단체제를 해체시켜버린 해인사 승려대회가 결과적으론 종정의 뜻을 받든 것이라고들하는데 대회를 긍정하시는지?
△ 내뜻이라기 보다는 온 종도들의 뜻이라고 봐.
- 앞으로 새롭게 추진될 종단 개혁과 정화에 당부하고 싶은게 있다면….
△ 불교제도 개혁에는 무엇보다 일방적이거나 편파적이 아닌 전종도의 중지가 모아져야돼.
그리고 승려개인이나 집단·문중의 이해와 종권을 겨냥하는 등의 못된 탐심이 없고.
- 결국 개혁을 둘러싼 노·소간의 갈등은 민주적인 다수결 원clr대로 노장쪽으로 그 주도권이 옮겨진것 같은데….
△ 제도개혁과 같은 큰일은 원로·중진의 의견이 주가돼야 한다고 봐요. 뭐니뭐니해도 중은 절간생활을 오래해서 중물이 들어야돼.
젊은 승려들의 의욕과 패기도 좋지만 중냄새가 안난단말야. 사회에서 얘기하는 연륜이니 경륜이니 하는게 절집안에서는 중나이(법납)이지.
- 최근 몇년동안 잇달아 일어난 불교 조계종의 분규는 종단의 상하위계 질서와 기강을 문란케 한 역작용까지 빚은 것 같은데….
△ 부처님 율법만 지키면 다 되는 일인데 그게 안되고 있단말이야.
이제 조계종단은 개혁에 앞서 종단화합과 안정을 우선 이루어야겠습니다.
개혁한다고 떠벌리다 싸움판만 벌이는 망신을 또 당했으니 입이 열이라도 할말이 없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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