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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남긴 키워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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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일 월드컵이 한반도에 남긴 사회·문화적 족적은 깊고도 넓었다. 당연히 그 영향도 메가톤급이었다. 월드컵 열풍은 수많은 '현상'을 이곳저곳에 남겨놓았고 이들은 한·일 월드컵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굳어졌다.

레드 신드롬

월드컵의 상징색은 단연 '레드(붉은색)'였다. 젊은이가 주류였지만 70대의 할머니 붉은 악마, 50대의 대머리 붉은 악마도 적지 않았다. 붉은 악마 열풍은 '붉은색=공산주의'라는 낡은 공식을 단번에 부숴버렸다. 붉은색의 문화코드도 피와 악의 상징에서 젊음과 열정, 그리고 단합의 부호로 재탄생했다. 기업들은 레드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태극기 패션

월드컵 4강 신화는 전국을 태극기로 뒤덮었고, 태극기는 일상 영역으로 성큼 들어왔다. 응원용 치마, 망토, 두건 등으로 거침없이 사용되면서 태극기가 갖는 금기와 권위주의는 급격히 해체됐다.

길거리 응원

"개막식은 끝났지만 한국의 밤은 잠들 줄 모른다." 지난해 6월 1일 중국국제라디오(CRI)가 내보낸 월드컵 보도 1신이다. 미국의 CNN도 "길거리 응원이 한국인들을 한데 묶어놨다"고 감탄했다. 대형 전광판이 설치된 전국 수백곳의 광장에서 수백만명이 환호했고, 승전보와 함께 거리 인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월드컵이 끝난 뒤 거리응원은 '미군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거리 촛불시위로 이어졌고, 반미감정도 급속도로 확산됐다.

히딩크 신드롬

광주시는 4강 진출 후 거리 한곳을 히딩크로(路)로 명명했다. 광주시내에 히딩크 호텔도 등장했다. 인천 자유공원과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 옆 기념동산에 히딩크 동상과 흉상을 세우자는 논의도 일었다. 히딩크는 명예 한국민과 명예 서울시민이 됐다. 기업들은 '히딩크식 경영'연구에 달려들었고,'히딩크 CEO'론도 급부상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 짝"

이 응원구호는 월드컵 기간 국민들의 '공식 인사말'로 굳어졌다. 거리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한민국"을 외쳤고, 마침내 국제적인 유행어로까지 번졌다. 한국-터키전을 생중계한 미국의 스페인어 방송 유니비전의 아나운서는 한국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대~한민국"을 외쳤다.

꿈★은 이루어진다

준결승전인 독일전에 '붉은 악마'가 내걸었던 구호다. 여기서 ★은 월드컵 우승을 의미한다. 우승국은 유니폼의 국가 마크 아래 ★을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 구호는 '아름다운 불가능'을 상징하는 말로 굳어졌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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