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복에 대한 오마주 샤넬보다 두드러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6호 13면

서울 DDP에서 열린 샤넬 2015/16 크루즈 컬렉션. 검은 가체와 오방색 등 한복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 특징이다.

4일 오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1000여 명이 초대된 행사는 패션쇼라기보다 파티 분위기였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물론이고 그의 뮤즈인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틸다 스윈튼, 모델 지젤 번천 등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했다. 실제로 유명인이 등장할 때마다 장내가 술렁였다.

DDP서 열린 샤넬 2015/16 크루즈 컬렉션 리뷰

쇼장 역시 파티장이 되기에 충분했다. 천장과 바닥이 온통 하얀 공간. 관람객 의자인 원형 스툴이 마치 롤리팝 캔디처럼 하나하나 꽂혀 있는듯했다. 그 사이사이 물 흐르듯 꺾이고 돌아치는 동선이 생겨났다. 팝아트적인 무언가가 깜짝 튀어나올 것 같은 공간이었다.

허나 의상은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지난해 개최지였던 두바이에서 전통 모티브를 가미한 의상-긴 튜닉과 넓은 통의 바지-을 선보였기에 한복을 참고한 의상이 나오리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바. 하지만 런웨이에 나온 절반 이상의 옷에서 한복이 느껴졌다. 칼 라거펠트의 ‘한복에 대한 오마주’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도입부터 색동의 향연이 펼쳐졌다. 빨강·검정·흰색·파랑 등 기본색 외에도 형광을 띤 분홍, 민트, 청록빛 블루 등 모던한 컬러가 더해졌다. 이는 재킷으로 스커트로 블라우스로 변주되며 쇼 전체의 무게 중심이 됐다.

한복 모티브는 컬러만이 아니었다. 의상의 형태 역시 한복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소매가 넓고 어깨 부분이 둥글었다. 아예 두루마기를 본뜬 디자인도 있었는데, 여기에는 짧은 통바지를 짝지어 현대적 감각을 살렸다. 상체를 그대로 드러낸 튜브톱 드레스에선 저고리 없이 원색의 한복 치마만 입혔던 이영희 디자이너의 ‘바람의 옷’이 연상됐다.

소재에 있어선 샤넬 특유의 우븐 트위드(굵은 양모로 짠 모직물)가 주로 쓰였다. 여기에 리넨·오간자·레이스처럼 가볍고 속이 비치는 소재가 더해졌다. 그리고 이들은 조각보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패치워크 의상에 녹아들었다.

이번 쇼에서 의상만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액세서리였다. 모든 스타일링에 흑발 가체를 빼놓지 않았다.

미키 마우스의 귀처럼 부피는 크지 않지만 모델들의 금발에 대조되기에 눈에 띄는 장식이 됐다. 또 흰색 버선에 검정 고무신을 연상시키듯 흰 양말에 굽 낮은 메리 제인 구두를 짝지은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이번 쇼에 대해선 평가가 갈린다. ‘샤넬’보다 ‘한복’이 앞세워진 쇼라는 평도 심심찮게 들린다. 한복의 요소들을 지나치게, 그대로 드러냈다는 얘기다. 이유가 있다. 오방색 컬러의 차용, 패치워크 장식, 곡선을 부각시킨 재킷과 치마 드레스는 모두 국내 디자이너들이 ‘한국적 미’를 내세울 때 한 번씩 선보였던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패션계 인사 중 한 명은 “대학생 졸업작품전에 꼭 보게 되는 디자인”이라는 혹평을 했다. 이는 라거펠트라면 기존의 디자인을 뛰어넘어, 그가 구축해 온 샤넬의 패션 철학에 조화되는 의상을 선보이리라 기대가 컸기 때문일 터다. 김영진 한복 디자이너는 이에 대해 “패션은 결국 정신의 발현인데 몇 달 사이 한복의 내면까지 연구하기엔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스타성 있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인 그가 한국을 택하고, 또 한복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은 평가절하할 수 없다. 홍보 효과만을 노리자는 게 아니다. 잠시 컬렉션을 복기하며 자개를 수놓은 치마를 떠올려 보자. 최고의 장인들을 모아 자체 공방을 꾸리는 그가 아니라면 그 누가 섣불리 시도할 수 있었을까.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패션의 마법이 한복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그는 보여줬다. ‘패션계의 교황’이라는 타이틀은 그런 것이다.

글 이도은 기자, 사진 샤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