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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국제화에 못따라가는 수사|암달러상 잇단 피살…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두건의 암달러상 피살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는 바람에 경악과 불안에 떤 며칠이었읍니다. 그래도 회현동사건은 범인들이 김포공항과 홍콩에서 각각 검거돼 다행입니다만 명동성당사건은 발생 5일째를 맞도록 이렇다할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어 온 국민의 애를 태우고 있읍니다.
-명동성당에서 부녀자 4명이 피살되었다는 일보를 접했을땐 거의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가장 신성한 장소에서 그같이 끔쩍한 사건이 터지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읍니까.
-처음 청소반장 기씨의 신원이 밝혀졌을때만 해도 범행장소인 교회법원과 사건을 연결시긴 추리까지 나왔지만 뒤늦게 암달러상 3명의 신원이 밝혀지며 강도살인으로 굳어졌죠.

<성역이라 수사지장>
-경찰은 범행장소가 바로 성당구내라는 점에서 범인과 성당과의 연고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러나 성당 관계자로부터 수사에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거의 듣지 못해 어려움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성역을 존중한다는 경찰의 태도는 역력하게 나타났어요. 영락교회 박목사 사건도 있고해서 현장주변에서 천주교와 달러라는 말이 묘한 뉘앙스를 풍겼을때 경찰은「암달러상 조사결과 그런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애써 부인하는 등 말입니다.
-회현동사건은 명동성당사건으로 전국이 발칵 뒤집혀 있을때 터진 것이어서 경찰은 그 어느때보다도 당황해하는 모습이었어요. 한 경찰간부는 두사건 모두 서울 중심가에서 대낮에 발생한 점으로 미뤄 원한 강도의 차원을 넘어 사회불안을 노리는 불순세력의 소행으로까지 생각했다고 털어놓더군요.

<시경선 희비엇갈려>
-서울시경국장 등 관계간부들은 모두 현장으로 달려나갔고 치안본부도 별관 형사과장 방에서 김상조3부장 주재의 긴급 간부회의를 여는 등 벌집을 쑤셔놓은 듯 부산했어요. 간부회의가 열리는 중에도 현장에서의 보고전화가 2∼3분 간격으로 걸려왔고 전문도 수시로 전달됐어요.
이날은 마침 고위층에계 명동성당사건을 보고하려던 참이었는데 회현동사건까지 터져 낭패가 이만저만 크지 않았다고 한 간부가 귀뜀하더군요. 다행히 보고할 때는「범인1명 검거」소식을 들고 갈수 있어 다소 체면이 섰다는 후문입니다.
-관할인 남대문경찰서도 시간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어요.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식으로 명동 암달러상 피살사건이 난지 불과 이틀만에 또다시 암달러상이 피살되자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건현장에 도착해 보니 수사관들은 바쁘게 움직이는 중에도 침울한 분위기더군요.

<"공항막아라"는 과장>
그런데 사건발생 2시간이 지난 하오 1시30분쯤 범인 2명중 1명이 김포공항에서 잡혔다는 소식이 날아들자 이 침울한 분위기는 금방 잔칫집 분위기로 바뀌었어요.
-사건현장인 최씨방 맞은편 쪽방에서 수사를 직접 지휘하던 안희상 시경제2부국장·한광환 남대문경찰서장 등이 갑자기 회의를 중단한채『상부에 긴급보고 할 사항이 있다』면서 밝은 표정으로 뿔뿔이 헤어지더군요.
취재진들도 무언가 진전이 있구나 싶어 서장실에 달려가 보니 한서장은 전화통을 불잡고치안본부·시경 등에 검거사실을 보고하면서 밝은 표정이더군요.
-그러나 이 잔칫집 분위기도 잠시뿐 또 다시 초상집 분위기로 돌변했어요.
하오5시쯤 범인중 1명인 정세권이 수사진의 눈을 피해 CAL편으로 이미 출국한 사실이 밝혀진 거죠.
-천기광 시경형사과장·한서장등 경찰 간부들이 상부로부터 범인을 놓친데 대한 호된 꾸지람을 듣고 전전긍긍하고 있을때 하오8시쯤 홍콩 카이락 공항에서 정이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간부들의 얼굴엔 다시 화색(화색)이 돌더군요.
-그런데 이번 사건의 범인이 중국인이어서 경찰이 범인조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어요.
범인 등자견을 검거하자 경찰은 화교청년 l명을 데려와 통역을 시켰으나 이 청년이 동족에(?)를 발휘, 범인에게 동정적인 말만 할 뿐 수사에 도움을 줄만한 통역을 해주지 않았어요.
이에따라 경찰은 뒤늦게 정년 퇴임한 전직 외사계장을 데려다 중국어통역을 맡겨 겨우 범행동기 등 윤곽을 잡을 수 있었죠.

<주범 정은 여유보여>
-이젠 우리나라도 외국인 범죄에 대비, 전문통역을 할 수 있는 수사관을 양성해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일부보도에 피해자 최씨가 숨지기 직전 『범인은 중국인이다』『공항을 막아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자 한 경찰간부는『목에 치명상을 입어 즉사 직전의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느냐』며『신문이 정밀수사로 범인을 체포한 경찰의 공을 깎아 내리려 한다』고 투덜대더군요.
-이 부분은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다소 과장해 말한 것으로 밝혀졌지요.
-경찰이『어깨를 다치고 불안해하는 등 거동이 수상한 20대를 잡아라』고 정을 수배했으나 막상 정은 상당히 여유있는 모습으로 공황을 빠져나갔답니다. 출입국 관리국 직원이 정의 출입국카드에「Cheung」이라고 정의 이름을 적자 정은『내 이름은 Cheng이다. 스팰링이 틀렸다』면서「씨익」웃는 여유까지 보였답니다.
-등등과 정은 짜기로 소문난 중국인 습성답게 호텔 식사는 한번도 사먹은 적이 없고 방안에서 즉석라면 등을 조리해 먹었답니다. 정이 묵었던 서울텍스호텔 방에서「사발면」의 빈껍질만 10여개 나왔어요 종업원들은 이들이 콜라 한병도 호텔 밖 구멍가게에서 사다먹었다고 말하더군요. 팁도 한푼 없었답니다.

<호텔비 안내고 도주>
-등·정은 또 숙박비를 내지 않고 갔다더군요. 호텔측은 이들에게 15만여원을 떼었다고 투덜대고 있어요.
-잇따른 암달러상 피살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명동·회현동 일대의 암달러상들 대부분은 별로 동요됨이 없이 영업을 계속 하더군요. 자취를 감출 경우 의심을 받게 된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숨진 이종숙씨와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갖고있는「경이이모」라는 50대 암달러상은『돈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을만큼 겁도 나지만 의심받는게 싫어 매일 사무실에 나오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회현동사건은 외국인 범죄에 대한 정부대책의 많은 허점을 노출시켰읍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범죄인 인도협정문제를 비롯, 출입국관리 등 국제화시대에 따른 근본적인 외국인 범죄대책이 수립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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