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가득한시] 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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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숲 - 최정례(1955~ )

한 나무에게로 가는 길은

다른 나무에게도 이르게 하니?

마침내

모든 아름다운 나무에 닿게도 하니?

한 나무의 아름다움은

다른 나무의 아름다움과 너무 비슷해

처음도 없고 끝도 없고

푸른 흔들림

너는 잠시 누구의 그림자니?


어떤 영화에선가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이 말했다. 다른 여자들이 다 불쌍해 보여 … 사랑에 빠지면 나만 행복한 듯, 두 사람만이 인류의 사랑을 대표하는 듯 오만해진다. 하지만 정신 들어 둘러보면 다들 비슷한 사랑을 하고 있다. 좀 허무해진다. 그러나 그 허무가 더욱 간절한 반어법을 낳는다. 너 잠시 와 머무는 그림자 아닌 거지? 아닌 거지? 한편으론 간절함을 약화시키려는 두 겹의 반어법을.

김경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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