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힘빠지며 … 환율 900원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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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올해 달러화 약세에 베팅했다가 수억 달러를 잃었다. 한국은행과 상당수의 해외 투자은행들도 달러 약세를 전망했다.

'쌍둥이 적자'로 불리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너무 많아 달러화 약세는 불가피할 것이란 논리에서였다. 하지만 이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금리가 문제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년 새 연방기금금리의 목표치를 2%포인트나 올리자 금리 차이를 노린 국제자금이 미국으로 밀려들어 갔다. 수요가 급증한 달러화는 그만큼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년엔 사뭇 달라질 전망이다. 잠재해 있던 미국의 적자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데다 미의 금리 상승 행진이 멈출 것으로 예상돼 달러화는 약세로 돌아선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6.4%에 이르고, 내년엔 6.7%(8787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골드먼삭스는 고유가와 더불어 달러화 약세가 내년 세계경제의 쟁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심지어 프랑스 재무장관인 에르베 게마르는 달러화 약세를 단정짓고 "내년 2월 서방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담에서 달러 약세 기조를 차단키 위한 공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화 강세 어디까지=새해를 앞두고 원화가 빠른 속도로 강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12월 들어 본격화한 달러화 약세 추세가 지속되면 내년 초 원-달러 환율은 990원대로 진입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7원 내린 1011.8원을 기록했다. 올 하반기 1050원대를 두 차례나 돌파하며 강세를 보였던 달러화가 최근 약세 기조로 돌아서면서 환율이 빠른 속도로 세 자릿수에 근접하고 있다.

올 4~5월엔 990원대 진입을 일곱 차례나 시도했지만 달러화 강세 기조에 따라 6월 말부터 상승세로 돌아선 원-달러 환율은 12월 초까지 평균 1030~1040원 사이를 오갔다. 지난해 말(1035.1) 수준이었다.

반면 달러화는 올 들어 이달 초까지 일본 엔화에 대해 14.3%, 유로화에는 11.8%씩 값어치가 올랐다. 원화 가치만 예외적으로 국제 외환시장의 흐름에서 벗어났던 셈이다. 하지만 12월 중순을 고비로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원화가 빠르게 강세로 돌아서고 있다. 중국 위안화의 추가 절상 압력도 원화 강세 요인이다.

◆ 달러 다시 넘치나=환율이 하락하면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가 쏟아져 들어올 전망이다. 지난해 이후 올해까지는 외환 당국이 직접 매입 또는 구두 개입으로 환율 하락을 막았지만 새해 들어 달러화가 약세 기조로 돌아서면 시장 개입으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세계 4위 규모인 2100억 달러에 달한다. 외환 당국이 추가로 달러화를 사들이면 풀린 원화 자금을 흡수하기 위해 통화안정증권을 추가로 발행해야 하는 등 부담이 적지 않다. 외환 운용을 위해 올 7월 출범한 한국투자공사(KIC)가 제 역할을 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내년에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기업의 원화 환산 수입도 크게 줄어든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원-달러 환율이 1005원일 경우 내년 원화 환산 수출액 증가율이 9.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나, 990원대로 내려앉으면 7.6%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호.김준현.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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