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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 후보생들,한자 자격시험 때 카톡으로 단체컨닝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4월 11일 대학 학군단(ROTC) 후보생들의 한자 자격시험이 열린 부산의 모 대학교 강의실. 한 후보생이 스마트폰으로 시험지를 촬영했다. 소리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촬영 때 무음 기능이 있는 앱을 사용했다.

이 후보생이 찍은 문제지는 강의실 밖에 있는 다른 학군단 후보생과 한자에 능숙한 한문학과 학생 등 15명에게 전송됐다. 1명당 6~7문제씩 풀기 시작한 이들은 미리 만들어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정답을 올렸다. 강의실 내에서 한자시험을 치르던 후보생들은 이들이 보내준 답안을 시험지에 적고 시험에 합격했다. 시험 감독관은 부정행위를 알고도 모른 척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국가공인 한자 자격시험에서 조직적으로 부정 행위를 한 부산 지역 ROTC 후보생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시험을 주관한 업체의 군특별검정회 본부장은 부정행위를 묵인하고 합격률을 조작해 수억원의 뒷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금정경찰서는 6일 업무방해 등 혐의로 부산 지역 4개 대학 ROTC 후보생 6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국가공인 한자 자격시험에서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한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이 기간 치러진 ROTC 특별검정에 4개 대학 1216명이 응시해 이 중 842명이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적인 부정행위 배경에는 시험 주관업체의 군특별검정본부장 차모(54)씨가 있었다. 차씨는 범행에 가담한 ROTC 후보생 측에 접근해 부정행위를 조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서 차씨는 한자 자격시험 수험생들을 상대로 특정 출판사의 예상 문제집을 판매하고 책값의 절반을 업체로부터 돌려받는 방법으로 지난 5년간 3억원 상당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자신이 소속된 한자검정업체로부터 응시 인원 1명당 9600원(응시료 2만1000원)을 받는 등 9년간 재직하며 9억6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차씨는 부정행위로 합격률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타인 명의를 도용해 시험에 응시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 실제 합격률이 70% 이하인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경찰은 부정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응시자의 정답지를 오답으로 만들고 불합격 처리한 흔적도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차씨를 구속하고 시험 감독관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부정행위를 알고도 묵인한 한자 자격업체에 대해서는 국가공인 해제를 교육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배용석 부산 금정경찰서 지능팀장은 “부정시험이 들통난 ROTC 후보생들은 법원 판단에 따라 내부 징계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며 “후보생들은 장교 퇴임 후 기업에 취업할 때를 대비한 ‘스펙 쌓기’용으로 한자 자격을 취득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부산=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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