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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어휴 더워! 엄마, 우리도 에어컨이나 사자』 고 조르던 아이가 올 여름엔 유치원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상가를 지날 때마다 아이는 물놀이 용품을 눈여겨 보았고 사달라고 떼를 쓸 기세였기에 임시변통으로 방학때로 미루었던 탓이다.
『방학하면 어떻게 할꺼니?』
『해수욕장 가서 텐트치고 수영하고∴』녀석은 방바닥에 엎드려 헤엄치는 흉내를 내며 즐거워했다. 복작거리는 인파에 부대끼고, 갖가지 무절제한 행락질서에 식상하고, 게다가 아폴로 눈병이란 후유증까지 앓아야 하는 나들이를 아이는 고대하고 있다니-.
내가 어릴 적에도 방학을 고대했었다.
덜컹거리는 버스가 뽀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포플러가 늘어선 신작로를 달려 회문리 마을 어귀에 닿으면 우리형제들은 앞다투어 외가로 뛰어갔다.『할머니이-』 하고 숨을 헐떡이며 사립문을 들어서면 『오오냐, 내 새끼들. 어서 오니라』 하시며 맨발로 달려나와 맞아주셨다. 때맞춰 마당에선 떡메 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느새 동생들은 그물을 들고 냇가에 가선 『야아.모래무지다! 아니다, 빠가사리다』 고 외치며 첨벙거리고 물장구치고 물싸움했다.
밤이 되어 모깃불 피워 놓고 멍석 위에 둘러앉으면 할아버지의 옛이야기는 밤이 이슥토록 이어졌었다. 그 밤에 할아버지무릎에 베고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의 별들은 어찌 그리도 아름답던지!
우리는 외가에 머무르면서 방으로 논으로 원두막으로 누에방으로 따라다니며 보고 듣고 직접 체험의 계기를 가졌다.
자연과 가까와질수 있었으므로 교과서 밖의 것들도 알게 되고 몸도 건강해졌지만, 나눔과베품의 후덕한 인정 속에서 마음까지 살찔수 있다. 오늘 아이에게 주어진 가정학습의 기회를 어떻게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할지. 맑은 수면이나 다름없는 아이의 마음속에 어떤 풍경을 담아 줘야 할지 마음만 조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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