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방식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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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나는 백남준의 비디오예술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는않지만 그의 말하는 방식만은 높이 평가한다.
그의 말은 솔직하고 억압적이지 않다.
때로 그의 말은 해학적으로 들리기 까지 한다.
억압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높은 평지에 이른 사람들이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모습이다.
백남준은 그의 비디오예술을 스스로 쇼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쇼는 구경거리라는뜻이다.
구경거리라는 말을 그는 별다른 부끄럼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의 구경거리는 위락적이며 소비적인 구경거리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보게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며 그의미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반성적인 구경거리다.
연초에 방영된 한 쇼에서 그의 쇼가 반할리우드적인 쇼라는 것을 그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나는 할리우드에서 재미있는 쇼를 만들면 재미없는 쇼를 만들고 거기에서 재미없는 쇼를 만들면 재미있는 쇼를 만든다라는 그의 말은 그의 쇼가 비판적쇼임을 입증하는 것인데 그런 말을 할때도 그의 말은 억압적이지 않고 진솔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박하다.
예술을 엄숙한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그는 아무 부끄럼없이 예술이란 지루한 삶을 맛나게하는 양념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서구 부르좌의 지루하고 권태로운 삶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영위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삶이므로 예술은 양념이상의것이 되어야한다라는 반론이 성립안되는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백남준의 말에서 감동한 것은 말하는 방법의 자연스러움과 솔직함이다.
그의 말에 찬성하건 안하건 그가 말하는 것을 듣거나 보고있으면 즐겁다.
그 즐거움은 그가 비억압적으로 말하고 있는데서 생겨나는 즐겨움이다.
내의견에 대해 뭐라고 말해도 좋다.
나는 내생각을 그대로 말할 따름이다라는 것을 그의 말은 드러낸다.
그 비억압적인 태도는 말을 즐기는 태도다.
말은 원래 억압적이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의 제도라는 것을 못느끼게 하는제도다.
「나는 학교에 간다」는 말은 맞고 「학교가 나를 간다」 는 말은 맞지않다.
왜? 먼저 것은 자연스럽고 뒤의 것은 자연스럽지않기 때문이다.
말은 자기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게하는 인공물이다.
예술은 넓은 의미에서 그말의 제도성을 부숴버리려는 달성하기 힘든 욕망을 동인으로 간직하고 있는 제도다.
그것은 제도를 파괴하려는 제도다.
예술, 좁게 말해서 문학은 말의 파괴서 인정하는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가장 두드러진 제도다.
예를들어 시에서는 때로 말의 문법이어긋나기도 하며, 소설에서는 실제로 일어날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제도가 제도를 파괴하는 제도서 만들어낸것은 역사의 간계이겠지만 사회는 문학이나 예술같은 제도를 만듦으로 사회의 부정적 폭발을 어느정도는 해소한다.
문학이나 예술은 제도의 부정성을 흡수하는 압지와도 같다.
문학, 예술이 그런 역할을맡을수있는것은 그것이 말의억압성을 최대한으로 줄이려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하면 안돼」라는 말은 「그런 것을 하면 안돼」 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문학작품은 그런 말을 하면안돼라는 말을 하지않는다.
문학작품은 그런 억압적인말을 하는 대신 그것을 즐기기를 바란다.
그것이 작품이 말하는 방식이다.
아무리 자기가 좋은 이야기를 하고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수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좋은 이야기 자체가 억압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반성이 불가능해진다.
백남준의 말하는 방식은 언제나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대개는 진솔하고 힘있다.
그는 옳은 소리를 억압적으로 되풀이 하지 않는다.
옳은 소리만을 목청 높여 말하는 사람들의 말하는 방식은 억압적이다.
다시말해 위선적이다.
거기에는 회의가 없기 때문이다.
말을 억압적으로 만드는것은 공식문화에서는 눈치이며 비공식문화에서는 확신이다.
「이런말을 하면 안되지」 라는것은 눈치이며 「이런말만 해야지」 라는것은 확신이다.
눈치 잘보는 사람의 엄숙주의와 확신에 찬 사람의엄숙주의는 억압의 동일구조다.
나는 누구나 비억압적으로말하는 사회에서 살고싶다.
나는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않은 사회에서 살고싶다.
다시 말해 백남준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살고싶다.
그것이내가 꾸는 예술의 꿈이다. 김현 <서울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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