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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식 챙기기도 지나치면 병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 고통스럽거나 생활에 부정적인 결과 초래하면 강박증 …여유로운 마음으로 균형 잡힌 식생활해야

[중앙포토]

건강식품 강박증을 뜻하는 ‘오소렉시아 너보사(Orthorexia nervosa)’는 ‘똑바른, 적절한, 올바른’의 뜻을 지닌 그리스어 ‘ortho’에서 유래했다. 요즘 ‘로(raw, 생식)’ ‘클린(clean, 해독)’ ‘팔레오(paleo, 원시)’ 같은 말이 들어가는 생활방식 운동을 따르는 사람들 일부에게서 볼 수 있는 건강식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말한다.

오소렉시아 너보사는 1997년 미국 의사 스티븐 브래트먼이 뉴욕주 북부의 한 공동체에서 생활한 뒤 그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신조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곳에서 ‘적절한(proper)’ 음식 먹기에 대한 건강치 못한 집착이 생겼다. 머릿속에 온통 음식 생각뿐이었다. 밭에서 생채소와 야생 식물을 찾아 먹는 습관이 집착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거기서 헤어나기가 매우 어려웠다. 바른 식습관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브래트먼의 설명은 의학적 이유나 과학적으로 타당한 근거 없이 섭취하는 식품을 제한함으로써 건강을 약속하는 수많은 유행 다이어트에 적용된다. 로푸드(raw food) 추종자들은 ‘해독과 면역력 증진(cleansing and immune-boosting)’에 효과적이라는 생식으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조율하는”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는다. 로푸드 다이어트는 식품을 44℃ 이상으로 가열하지 않음으로써 “식품 속에 살아 있는 효소를 온전하게 유지해준다”고 한다. 글루텐이나 낙농제품, 설탕은 허용되지 않는다.

해독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 역시 글루텐과 낙농제품을 먹지 않으며 심지어 육류도 삼간다. 요가 수업이 끝나고 나서 ‘담낭을 청소해주는 슈퍼푸드 그린 스무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또 원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크로스핏(crossfit, 여러 종목의 운동을 번갈아 하면서 전신 발달을 도모하는 방식) 수업이 끝난 뒤 스테이크로 식사하면서 체력을 보강한다. 이들에게도 글루텐(또는 모든 곡물류)과 낙농제품을 비롯한 ‘독소(toxins)’ 식품이 허용되지 않는다.

얼마나 확산됐나?

‘정상적인(normal)’ 건강식 습관과 건강식품 강박증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건강하게(healthily)’ 먹는 습관이 개인에게 심한 고통을 주거나 생활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때는 강박증으로 볼 수 있다.

어쩌다 식빵 한 조각을 먹고 나서 죄책감으로 우울해지거나 케일이나 치아, 퀴노아 등 건강식을 먹을 시간이 다가오면 불안해지는 경우도 그렇다. ‘슈퍼푸드(superfood)’ 섭취 원칙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는 집에서만 식사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행동들은 본인의 정신건강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건강식품 강박증은 임상적으로 섭식장애로 분류되진 않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어느 정도 확산됐는지를 측정하기 위한 설문지를 개발해 다양한 인구층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2005년 개발한 ORTO-15 설문지는 40점을 준거점수로 삼고 그 미만은 건강식품 강박증으로 본다. 40점 이상도 병적인 섭식행동(pathological eating behaviours) 또는 강박-공포 인격특성(obsessive-phobic personality traits)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하루에 음식을 걱정하는 시간이 3시간 이상인가?’ ‘건강한 식사 규칙을 어겼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가?’ 등의 질문이 포함된다.

또 다른 이탈리아 연구팀은 이 설문지를 이용한 연구에서 응답자의 57.6%가 건강식품 강박증으로 판명됐다고 보고했다. 그중 여성 대 남성의 비율은 2:1로 나타났다. 하지만 준거점수를 35점으로 낮췄을 때는 강박증으로 분류된 응답자의 비율이 21%로 줄었다.

정신장애인가?

대다수 연구가 의료 종사자 등 건강식품 강박증의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인구층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터키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ORTO-15(준거점수 40) 조사를 실시한 결과 45.5%가 강박증으로 판명됐다. 터키의 공연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56.4%(성악가는 81.8%, 발레 무용수는 32.1%)가, 스페인의 아시탕가 요가 강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86%가 건강식품 강박증으로 분류됐다. 다른 종류의 설문지인 브래트먼 검사를 이용한 연구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다이어트 전문가 12.8%가 건강식품 강박증으로 분류됐다.

건강식품 강박증은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데 이용하는 미국심리학회(APA)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 수록돼 있지 않다. 현재 DSM-5에는 거식증(anorexia nervosa), 대식증(bulimia nervosa), 폭식증(binge-eating disorder), ‘기타 급식 및 섭식 장애(other specified feeding or eating disorder)’ ‘달리 분류되지 않는 급식 및 섭식장애 (unspecified feeding or eating disorder)’가 올라 있다.

일부 임상의는 건강식품 강박증이 독립적인 섭식장애로 인식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임상 진단 기준을 제시했다. 그들은 체중감량보다 완벽하거나 순수한 느낌을 더 큰 동기로 삼는 경향 등을 건강식품 강박증에 동반되는 병적인 행동으로 꼽았다.

균형을 유지하라

한편 건강식품 강박증이 기존의 섭식장애나 다른 정신장애 범주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는 의사들도 있다. 브래트먼은 2010년 이렇게 설명했다. “건강식품 강박증은 때때로 강박장애(OCD)의 요소를 가진 듯 보이며 일반 거식증의 요소를 포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OCD나 거식증과는 다른 특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건강식품 강박증에 관해서는 분명히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진단 관련 문제나 DSM에 독립적인 섭식장애로 수록될 가능성에 대해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환자가 정신장애의 여러 유형을 넘나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 때로는 섭식장애 환자가 어떤 유형인지 분류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인지행동치료법(cognitive-behavioural therapy) 등의 해결책을 제공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영양학자로서, 또 대식증을 극복한 사람으로서 독자에게 조언하고 싶다. “의료 종사자와 유명인사를 포함해 건강식을 적극 권장하는 사람들이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조언을 할 때는 그들을 신뢰하지 마라.”

음식을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들지 마라. 브래트먼은 “몸에 좋은 새싹 채소나 케일을 혼자 먹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피자를 나눠 먹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건강식 챙기기는 ‘대체로 또는 가끔’ 하면 된다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균형 잡힌 식품 소비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필자 레베카 샬로트 레이놀즈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학(UNSW)의 영양학 강사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글=샬로트 레이놀즈,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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