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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지구촌 뜬별 진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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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올해도 지구촌에선 많은 별이 뜨고 졌다. 뉴스메이커로 부상한 별 가운데엔 여성이 많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초의 여성이자 동독 출신 총리란 기록을 세웠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세계 각국을 누비며 미국의 헤게모니를 다졌다. 사라진 별 중에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빈 자리가 특히 크다.

앙겔라 메르켈(51) 독일 총리는 여러 모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 최초'의 타이틀을 자랑한다. 독일에선 처음으로 여성 총리라는 뜻의 단어 '칸츨러린'(Kanzlerin)이 생겼다. 통독 15년 만의 최초 동독 출신 총리란 점은 정치적 통합의 상징으로 풀이된다. 통독 직후 여성.청소년부 장관 등을 최연소로 거쳐 총리직까지 최연소로 맡았다. 국제정치 차원에서 메르켈의 등장은 유럽의 변화로 주목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유럽식 사회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여성 파워로는 콘돌리자 라이스(51)가 꼽힌다. 라이스가 보여주는 영향력의 원천은 물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신임이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 반면 라이스는 지적이며 세련된 외교 행보로 국제사회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라이스와 반대편에 선 여성 파워는 '반전 엄마' 신디 시핸(46)이다. 라이스가 이라크 전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구촌을 누빌 동안 시핸은 전쟁을 저지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남성으로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64) 총리와 영국의 데이비스 캐머런(39) 보수당수가 '개혁'의 상징으로 돋보인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9월 조기 총선이란 도박에서 압승을 거두어 일본 정치판을 '개혁'으로 이끌었다. 영국의 캐머런은 '보수당의 토니 블레어'라는 참신한 이미지로 눈길을 끌었다. 블레어 총리가 노동당을 개혁해 3기 연임의 바람을 일으킨 것처럼 캐머런이 깊은 잠에 빠진 보수당을 개혁하리란 기대다.

제3 세계에선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반미를 주도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올해 고유가 덕분에 불어난 석유판매 대금으로 중남미 주변국에 선심을 쓰면서 이 지역 반미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1979년 미국을 몰아냈던 이란 이슬람 혁명의 주체답게 정권을 잡자마자 반미.반이스라엘을 주창했다. 특히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과 굽히지 않는 핵개발 의욕은 중동 지역의 안정을 흔들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78)도 예상 밖의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근엄한 라칭거 추기경 시절 대중과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였던 그는 교황이 된 뒤 겸손하고 소탈한 면모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여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은 10억 가톨릭만의 뉴스가 아니었다. 그는 26년간 로마 가톨릭 수장으로 전 세계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을 뿐 아니라 폴란드 출신 교황으로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에 보이지 않는 초석을 놓았다.

윌리엄 렌퀴스트 미국 대법원장 역시 30여 년 만에 대법관 자리를 떠난 거인이다. 그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됐고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이 됐다. 33년간 보수 성향의 판결을 통해 미국 사회의 보수화를 뒷받침했다.

미국에선 두 명의 여성이 아쉬운 퇴장으로 주변을 울렸다. 로사 파크스는 백인에게 버스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작지만 용기 있는 행동'으로 흑인 인권운동의 불씨를 지핀 자그마한 흑인 여성이다. 그는 평생 흑인 민권운동의 대모였다. 젊은 백인 여성 테리 시아보(41)의 죽음은 생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식물인간 시아보의 생명보조장치를 떼느냐 마느냐는 미국 사회의 보수.진보를 대변하는 논란이었다. 부시 대통령 등 보수세력은 생명 연장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제거를 명령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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