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년…쓰나미 최대 피해지 인도네시아 반다아체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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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만명 앗아간 재앙 "상처 아물려면 10년"
반다아체(인도네시아)=최형규 특파원

동남아를 집어삼킨 쓰나미가 발생한 지 26일로 꼭 일년이다. 한날 한시에 23만여 명이 쓰나미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피해는 아프리카 해안에 미칠 정도로 광범위했다. 미증유의 대재앙이었다. 그로부터 1년. 변한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아직 정확한 사망자 수조차 불분명하다. 기관마다 피해 집계가 다르다. 이 때문에 쓰나미 피해를 본 11개국은 아예 정확한 집계를 포기했다. 대략적인 숫자만 보고하고 있을 뿐이다. 피해는 엄청났지만 복구는 더디기만 하다. 대부분의 이재민은 아직도 구호시설에서 연명하고 있다. 일자리도 없다. 기대하는 건 오직 구호의 손길뿐이다.

전체 쓰나미 희생자의 80%가 집중된 인도네시아 아체주의 경우 이제 겨우 10% 정도의 복구율을 보이고 있다. 가옥 15만 채가 부서졌지만 겨우 1만6000채가 재건됐을 뿐이다. 아직도 50여만 명이 텐트 혹은 이재민수용소에서 극빈자 생활을 하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는 아예 복구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복구율은 5%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태국은 휴양지 푸껫 등지를 복구해 지금은 관광객을 받고 있다. 복구율이 30~40%에 달한다는 인도에서 쓰나미 재난은 잊혀진 지 오래다. 극빈층이 워낙 많고, 크고 작은 다른 재해가 끊이지 않는 탓이다.

아체에서 유엔개발계획(UNDP)의 구호활동을 지휘하고 있는 팀 왈시는 "쓰나미의 상처가 아물려면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1년…쓰나미 최대 피해지 인도네시아 반다아체를 가다

#신성한 나무

쓰나미로 최악의 피해를 본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반다아체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콘크리트 바닥만 남은 집, 뿌리가 뽑힌 채 썩어 가는 나무, 크고 작은 웅덩이…. 쓰나미 발생 1년을 닷새 앞둔 21일. 간간이 보이는 복구 현장 모습이 오히려 어색해 보였다.

지프를 몰고 시내에서 서쪽으로 20분쯤 달려 도착한 람포 다야 마을. 주민 1600여 명 중 80여 명만이 쓰나미의 거친 파도를 헤치고 살아남았다. 족히 30m는 돼 보이는 마을 입구의 큰 나무엔 '신이여 우릴 구하소서(God Save Us)'라는 영어 팻말이 달려 있다. 한 노인은 "'마호메트 포혼'이기 때문에 이런 문구를 달았다"고 설명했다. '신성한 나무'라는 뜻이다. 버드나무의 일종인 이 나무는 30m가 넘는 파도 속에서도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남았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 주민은 "일년새 달라진 것은 시체 냄새가 없어지고 물이 빠진 것 뿐"이라고 말했다.

#살아남은 자의 눈물

람포 다야 북쪽 바닷가엔 이재민 텐트 7개가 있다. 라마 에파(19.여)는 4평 남짓한 텐트 안에서 네 명의 식구와 함께 웅크리고 있었다. 원래 식구는 열두 명이었다. 그러나 쓰나미는 아버지와 어머니, 큰 언니의 두 딸, 큰 형부, 작은 언니와 라마의 딸 등 일곱 명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그러나 살아남았다고 산 것이 아니다. 다섯 식구의 한 달 수입은 배를 빌려 고기잡이로 벌어들이는 5만 루피아(약 5000원)가 전부다. 연명은 구호품으로 하고 있다. 매월 개인당 쌀 12㎏, 생선 통조림 5개, 식용유 0.6㎏, 그리고 소금과 국수 약간을 받는다. 이야기를 마치며 라마는 눈물을 훔쳤다.

#사라진 학교

반다아체시 외곽에 위치한 우칸바다 원 초등학교. 바다까지 거리는 1㎞ 남짓. 쓰나미 전까지 26명의 교사와 190명의 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사 8명과 학생 80명이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쓰나미가 데려갔다.

학교 건물 5개 동은 모두 파괴됐다. 현재 쓰고 있는 가건물은 7월 유니세프(유엔아동보호기금)가 지어줬다. 교사 에스피디(43)는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쳐야 아체에 미래가 있지 않겠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노르하이야티 교장은 "천막촌과 이재민 대피소 등에서 40대 이하 여성들의 임신이 유행"이라고 전했다. 쓰나미와 함께 사라진 아이가 워낙 많았던 탓이다. 반다.니아스 구호재건국(BRR)에 따르면 아체 지역 2000여 개 학교 중 1000여 개가 쓰나미로 종적을 감췄다.

#더딘 복구

라나. 올해 15살 난 소년이다. 고향은 자바섬. 7월 아체로 왔다. 구호 현장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그는 현재 반다 아체 남쪽 20㎞ 지점에 위치한 람푸우 마을에서 공사장 인부로 일한다. 일당은 4만 루피(약 4000원). 그는 "쓰나미는 모르겠고 일자리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 있는 100여 곳 공사장의 인부 절반이 외지인이고, 이 중 절반이 20세 이하다.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록 더디지만 복구 작업은 진행되고 있다.

BRR은 2009년까지 복구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소요 예산은 58억 달러. 지금까지 46억 달러의 구호금이 답지해 1000여 개 프로젝트에 배정됐다. 지난 1년 동안 가옥 1만6000여 채가 복원됐다. 앞으로 매월 5000여 채씩 집을 지을 계획이다. 그러나 텐트 생활을 하고 있는 6만7500명을 비롯해 아직 16만 명이 임시 거처에 살고 있다. 에릭 모리스 유엔 아체 협력관은 "복구 현장에 가면 인력도, 기술도, 돈도, 그리고 의지도 부족하다"며 한숨을 지었다.

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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