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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고향<113>곡산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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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곡산연씨의 시조는 고려충렬왕때 좌복야(좌복사·정2품)를지낸 연과창-.
관직에서 물러난후 황해도 곡산에서 여생을 보냈기에 후손들이 「곡산」 을 본관으로 삼았다.
연수창은 원래 중국의 홍농사람이었다는 설이 있다.
원이 중국대륙을 장악했던 1260년 고려는 원에 굴욕적인 항복을했다.
원종의 아들 충렬은 볼모로잡혀가 원의 제국대장공주 (원세조 홀필렬의 딸) 와 정략결혼을당했다.
그로부터 14년후인 1274년 원종이 죽자 충렬을 왕위계승을 위해 환국했다.
이때 제국대장공주를 호총, 공주와 함께 고려로 건너올 인물이 바로 연수창이라는 것이다.

<시조는 중국인설>
남한에만 약2만여명. 성별인구순위 75위.
문헌에는 「곡산」 외에「개성」 「광산」「남양」「청주」등 30여본이 전하나 그것은 모두 곡산연씨의 세거지나 분포지역일뿐 뿌리는 같다.
연경 (충숙왕·태사) 연조 (충목왕·령동정) 연단단 (충정왕· 대장군) 연주 (공민왕·한성부윤) 등을 고려때 곡산연씨의 맥을 이어올 중심인물들-.
이들중 연경은 충숙왕5년 문과에 급제, 삼중대광문하시중 대사등 벼슬에 올랐던 명신이다.
『바람결에 거문고소리 솔잎이 불어내고 비내리는 강언덕에 해당화가 피었구나』 (풍리연금송적발우중홍금해당개).
당대의 문장이기도 했던 연경이 남긴 「암곡시」 의 한귀절이다.
포은 정몽주와 인척간이였던 연주는 고려가 망하자 함흥에 은거, 두임금을 섬기지않는 충절을 지켰던 절신.
그의 아들이 조선초기의 명신이었던 연사종이다.
연사종은 고려말 (우왕14년) 요동정벌때 이성계의 휘하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고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원종공신에 올랐다.
제2차 「왕자의난」 때는 이방원 (대종)을 도움으로써 상장군·호조전서·판한성부사등에 올랐다.
해종10년에는 동북면병마절도사로 야인의 침입을 방어했고 세종때는 중군도총제를 역임했던 명장이었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동기에 아버지와 아들을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연사종은 전설적인 효자이기도했다.
태종14년 영흥부윤으로 있을때는 늙은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상을 당하자 3년을 흙베개를 베고 움막에서 살았다.
후에 곡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충북괴산군도안면 금당서원에 그를 향사하고있다.
연최속은 숙종조의 문장이였다.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업, 숙종8년 문과에 오르고 사헌부감찰이 되었으나 당쟁이 격화되는 것을 보고 사직, 학문연구에만 전념했다.
그후 숙종비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무고로 서인이되자 그부당함을 상소했다가 국문을 당한끝에 혹사했다.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이조판서겸 양관대제학에 추종되었다.
근세의 인물로는 한말의 유명한 의병장 연기우가 있다.
그는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덕물보에서 지홍윤등과 의병을 일으켜 대장이되어 적성, 삭령등지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1909년에는 13도창의대장 이린영과 합류, 서울진격을 감행했으나 양주에서 패했다.
그후 지리산에 본거를 두고 계속 항전하다 철마산전투에서 숨졌다.
그가 통솔하던 의병을 군기가 엄하고 민폐가 없어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다한다.

<4형제가 독립운동>
연병환·연병호·연병주·연병오등 4형제는 경술국치이후 모두가 중국으로 망명,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들중 들째인 연병호는 김구·신익희·이범석등과 함께 상해임시정부의 중심인물로 활약, 재상해한독당선전부장등을 지냈다.
그후 일의에 체포되어 8년의 옥고를 치르다 광복과함께 석방되어 제헌의원을 지냈다.
이밖의 조선의 인물로는 임진왜란당시 의병장으로 활약, 많은 전공을 세웠던 연충수 (안음현감)연사준 (이장판서) 연사화 (세종·좌승지) 연경(동·판중추) 연비(세조·상주목사) 연축(동·회양부사)연정(성종·증호조판서) 연정설(성종· 안동부사) 연간 (중종· 상주목사) 연충보 (명종· 평안병사) 등이있다.
곡산연씨는 그수는 적지만 해방후 사회각계에 많은 인재를 냈다.
연규집(전청주대학장) 연규횡(이박·충북대총장) 연경모 (의부· 서울대교수) 연만희 (유한스미크라인사장) 연상현(삼성코닝(주)상무이사)연영규 (동남증권사장) 연일수 (전수출공단이사장) 연제원(국회의원)연재흠 (범한실업회장) 연장성 (대한종합개발(주)사장) 연주흠 (전국회의원) 연하귀 (주덴마크대사) 연제원 (현대건설전무) 등이 해방후의 얼굴들이다.

<지명 인사>
▲연각희(정청주경찰서장)▲연규욱(한일의원장▲연규천(사업가)▲연규현(건설부호남국도곤리소장)▲연규홍(철도청서울사무소장)▲연규헌(재무부전산실장)▲연기호(전서울시내무국장)▲연기호(한국일보실장)▲연덕춘(한국흐로골프협회장)▲연명흠(연암학원 이사장)▲연병해(서울신문공무국장)▲연병찬(일흥공업사장)▲연봉학(지성·포항제철부장)▲연상(대전경찰서장)▲연승규(삼성중기사장)▲연난희(전 규격협회저무)▲연원희(주 수단공보관)▲연영희(의박·영신의원장)▲연정(미 은행이사장)▲연정열(한성대교수)▲연근택(한국석유유통협회감사)▲연관흠(음성교육구청교육장)▲연두희(협성가죽약품사장)▲연세희(동양화가)▲연제식(신부·서양화가)▲연용모(작가·신용보증기금차장)▲연원석(서기관)▲연원영(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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