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주택가 파고드는 성인 오락실 도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선두 1번 마(馬), 5번 마가 추월, 다시 7번 마…."

쩌렁쩌렁한 경마 중계 소음이 20일 오전 서울 강남 논현동 주택가에 울려퍼졌다. 소리를 따라 100여m를 가 보니 대로변에 있는 일명'스크린경마장'의 외부 스피커가 진원지였다. 컴퓨터 경마 게임을 하는 성인 오락실에서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주변에는 서너 곳의 스크린경마장이 더 있었다.

스크린경마장은 500~5000원의 판돈을 걸고 최고 900배의 배당을 노리는 게임장이다. 외형적으로는 배당금으로 상품권(문화.관광.도서 등 10종)을 받는 합법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주변에는 상품권을 현금으로 몰래 바꿔주는 교환소가 있다. 게임장 안에서 현금 거래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스크린경마, 릴(reel) 게임(다양한 문양이 회전하다 정지했을 때의 배열에 따라 점수를 얻는 게임) 등으로 대표되는 성인 오락실은 전국에 1만3000여 곳이 있다. 이는 2002년에 비해 5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사실상 도박장 영업을 하는 성인 오락실이 급증하고 있다.

◆ 하루 2.2곳씩 늘어나=올해 서울에서 문을 연 성인 오락실만 537곳. 월평균 67곳, 하루 평균 2.2곳이 생겨난 셈이다. 지난해에는 월평균 59곳이 늘어났다. 본지는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의 도움을 받아 서울시의 2002~2005년 구별 성인 오락실 등록 자료를 입수했다. 이를 지역별로 비교해 보는 지리정보시스템(GIS) 기법을 활용해 분석했다.

유흥업소가 가장 많은 강남구는 성인 오락실이 3년 동안 3배 이상 늘어나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오락실 수는 강동(386곳).서초(347곳).성동(295곳).중랑구(265곳) 순으로 많았고, 구(區)당 평균은 159개였다. 이는 2002년 평균(96곳)보다 70%가량 증가한 것이다. 상위 3개 구인 강동.서초.성동구의 약국 수는 각각 200.224.166곳(2004년 서울통계연보)으로, 이들 구는 성인 오락실이 약국.세탁소보다 많았다.

분석에서는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지역일수록 성인 오락실 증가율이 높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전체 구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수가 5위권에 드는 강서.은평.중랑.노원구의 성인 오락실 증가율이 90% 이상으로 평균 증가율을 크게 웃돌았다.

◆ 연간 12조원 뿌려져=정부는 연간 12조원이 성인 오락실에 뿌려지는 것으로 추산한다. 하루에 330억원씩 시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간다는 계산이다. 전문가들은 성인 오락실 급증의 원인으로 2001년 개정된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을 꼽는다. 이때부터 성인 오락실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었다.

문화부는 지난해 12월 성인용 게임기 한 대당 1시간에 9만원 이상 투입할 수 없고, 당첨시 지급하는 상품권도 1회 2만원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상당수 오락실은 오락기를 불법 개조해 시간당 투입 금액을 올리고, 수백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편법 영업 중이다.

임장혁.정강현.권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