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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닭꼬치·추로스 … 우리 맛 실종된 한옥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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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꼬치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다. 최근 이곳에선 전통 음식 대신 국적 불명의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성업 중이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 27일 오후 2시 전북 전주시 풍남동 한옥마을 태조로. 관광객들이 사방에서 밀려드는 네거리 인근의 ‘H문꼬지’ 상가 앞에 관광객 2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안에서는 종업원 2명이 오징어·문어 꼬치를 쉴 새 없이 가스불에 구워내고 있었다. 매운맛과 순한맛 등 소스를 뿌린 꼬치는 문어 4000원, 오징어 3000원에 불티나게 팔렸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치즈닭꼬치 집과 구운 떡복이치즈 간이음식점 앞에도 10여 명이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 건너편 점포들도 엄지손가락 크기의 떡갈비 4~5개를 끼운 완자꼬치, 기름에 튀긴 왕오징어, 아이스크림으로 속을 채운 추로스 등을 부지런히 쏟아냈다. 상가들은 한옥 지붕과 ‘한옥’이 들어간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전통 먹거리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었다.

 서울에서 친구들 3명과 함께 구경 왔다는 이미영(59)씨는 “젊은이들이 길게 줄지어 있길래 우리도 꼬치맛을 한번 보려고 서 있다”며 “떡이나 부꾸미·전 등 우리 음식이 있으면 전통 한옥마을과 잘 어울리고 반응도 좋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각광받는 전주 한옥마을에 국적 불명의 음식들이 판치고 있다. 연간 방문객 10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한옥마을의 인기가 사그라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옥마을은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음식점도 덩달아 우후죽순격으로 들어서고 있다. 전주시에 따르면 풍남동·교동 한옥마을 방문객은 2010년 350만 명에서 2013년엔 508만 명, 지난해엔 592만 명으로 늘었다. 식당도 2010년 36개에서 2013년 64개, 지난해 139개로 급증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길거리 음식점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태조로의 경우 경기전 정문 앞부터 100여m 구간에 20개 이상의 음식점들이 난립해 있다. 가게는 문어꼬치, 완자꼬치, 튀긴 떡갈비, 치즈닭꼬치, 추로스 아이스크림, 뻥튀기 아이스크림 등이 대부분이다. 비빔밥 등을 내놓는 향토 음식점은 1~2곳에 불과하다.

 이 같은 국적 불명의 길거리 음식점들은 옛 전통과 향수를 느끼려는 방문객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한옥마을에서 10여 년 간 문화기획자로 활동해온 오종근(53)씨는 “최근 한옥마을이 정체 불명의 먹자촌으로 변모하면서 ‘슬로시티’라는 지향점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더 망가지기 전에 먹거리 장터를 규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옥마을은 2010년 ‘국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식재료 원산지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는 가게도 적잖다. 한옥마을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 꼬치 집은 ‘문어의 원산지 표시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태현 전주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은 “20~30대 신세대 입맛만 겨냥한 길거리 음식이 자칫 한옥마을의 관광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악재가 될 수 있는 만큼 지역주민과 상가협의체 등을 통한 자율적 규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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