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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앙드레김 칠순에 인테리어 첫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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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 남자, 바쁘다.

인터뷰 와중에도 직원들에게 지시가 이어진다.
"손님의 가봉을 해야 한다"며 잠시 양해를 구하더니
뒤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음료수까지 챙긴다.
덕분에 잠시 주위를 살핀다.
흰색 벽면을 배경으로 은은한 연보라색 조명.
꽃무늬 소파 뒤로 흰색 천사 조각.
흰색 트리에 매달린 크리스털 사슴들이
살짝 흔들리며 색색의 빛을 반사한다.
그 뒤로 가지런히 진열된 화사한 의상들.

"늘 이렇게 바쁘십니까?"

"그럼요.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오후에는 나와서 일을 해요."

"주 5일제 아닌가요."

"공장에서는 그렇게 하죠. 하지만 예술가에게 쉰다는 말은 없어요."

노는 게 싫어 연휴에는 다른 나라에 나가 일을 본다는 그의 이름은 앙드레 김. 1935년생이니 올해로 만 70세다.

하지만 매년 20회에 가까운 패션쇼를 진행하고 아동복에서 골프웨어.속옷.화장품.선글라스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엄청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연륜이 엿보이는 앙드레 김의 손. [안성식 기자]

*고급스러우면서 밝은 인테리어

올해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데뷔했다. 8월 서울 목동에서 분양한 주상복합 아파트(트라팰리스)와 11월 대구 수성의 래미안 아파트 실내 디자인을 맡은 것.

"제가 추구해온 왕실 분위기의 고급스러움을 표현해 달라고 하셨어요. 평소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클래식한 유럽의 비잔틴이나 바로크적 취향을 우리 현실에 맞게 적용하려고 했지요."

그는 벽과 천장을 검게 하고 소파나 커튼도 가라앉은 색깔로 하는 전위적인 인테리어 경향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집은 젊은 부부가 살든 나이 든 부모님과 함께 살든 모든 가족이 따뜻한 화목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방문해도 '이 집은 참 행복해 보인다'고 느낄 수 있는 코지(cosy)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했죠. 밤색 가죽 소파에 베이지색 배경은 너무 포멀해 제 취향과 맞지 않아요."

그래서 그가 선보인 실내 인테리어는 진중하면서도 무겁지 않고 특유의 화려한 라인이 살아있다. 그만의 독특한 문장(紋章)도 빠지지 않는다.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주방·침실·거실(위부터). [안성식 기자]

*'앙드레 김 주얼리'도 기대하세요

그의 의상은 최고급 맞춤복 브랜드로 유명하다. 하지만 요샌 아동복이나 골프웨어 등 '앙드레 김'브랜드를 주위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다. 속옷은 홈쇼핑 채널에서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기업을 직접 이끄는 것은 제 적성에 맞지 않아요. 예술적 영감은 용솟음치지만 비즈니스에는 자질이 없어요. 데뷔 후 43년간 의상실을 해오고 있는데 기업 하는 분들의 제안이 들어와 38년째 되던 해 라이선스를 시작했어요. 저는 디자인 자문과 확정을 맡고 마케팅이나 회사 운영은 안 해요. 로열티만 받는 것이죠."

앙드레 김의 화려한 패션쇼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반짝이는 액세서리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 건 보석 사업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르면 내년 봄 론칭할 거예요. 다이아몬드.에메랄드.사파이어.루비.진주 등 파인 주얼리(Fine Jewerly.진보석)라인입니다. 보석이 박힌 고급 시계도 나올 거예요."

*내 패션의 화두는 기품

그의 말에는 몇 가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로열(Royal).자부심.예의.지성미.품위.기품 같은 것들이다. 그는 자신의 옷을 입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단아해지고 품위있는 몸가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옷은 입는 사람의 정신의 표현이며 그런 정신이 있어야 비로소 '패션이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저는 제 옷에 한국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세계인이 공감하는 한국의 미를 제 옷으로 살리고 싶은 거죠."

올 초 한국외대 부속 용인외고의 교복을 디자인했을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학생들이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끼고 학업에 정진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제가 디자인한 교복은 용인외고밖에 없어요. 그런데 거리에서 마주치는 (다른 학교) 학생들이 '우리 교복 만들어주셨죠?'할 때 참 곤란해요. 순수한 학생들에게 교복 업자들이 왜 제 이름을 파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비양심적이에요."

한국 패션계의 대선배인 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요즘 후배들은 너무 유행만 따라가는 것 같아요. 물론 상업성도 중요하지만 독창성과 창의성이 주위의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하죠. 유행에만 급급하면 독창성은 죽게 마련이에요."

*"흰색은 나의 순수"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의상실만 직접 운영하고 있는 앙드레 김. 그 흔한 홍보실 하나 없다. 그런 그에게 내년엔 새로운 명소가 생길 것 같다. 앙드레 김 디자인 연구소가 바로 그것이다.

"21년 전 경기도 기흥에 840평 정도 땅을 사놓고 틈틈이 나무를 심어왔어요. 보통 땅에 건물을 크게 짓는데 저는 건물은 150평 정도로 아담하게 짓고 정원을 만들 거예요. 거기서 패션쇼도 하고 작품 전시도 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꿈을 얘기하는 그의 얼굴엔 절로 미소가 배어나왔다. 그는 "조경에도 관심이 많다"며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적인 분위기(그는 'untouched beauty of nature'라고 소개했다)로 내년 가을께 개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질문을 하나 던졌다. "왜 항상 흰색 의상을 고집하시나요?"

"어릴 때부터 흰색을 너무 좋아했어요. 전 경기도 고양에서 자랐는데 당시 면 소재지 정도의 시골이었죠. 밤새 내린 눈이 초가집 지붕에 하얗게 쌓이고 아침에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제일 먼저 제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너무 좋아했지요."

말 그대로 흰색 예찬이다. "저도 32년 전엔 다른 색 옷을 입었어요. 그렇지만 정신적이고 순수한 마음의 색인 흰색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느낌을 주죠. 그리고 흰색은 제가 만나는 주위 분들에게 예의 있어 보인다고도 생각해요."

글=정형모 기자, 조도연 기자 <lumier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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