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잡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중·고교생들의 책가방이 무겁다는 것은 하루 이틀에 시작된 이야기가 아니다. 일선교사들에 의하면 첫 시간의 수업일수록 부실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책가방에 시달린 등교길에서 학생들이 어느새 파김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뿐더러 그것은 출·퇴근의 시민들에게도 어지간히 거북스러운 물건들이다. 아귀다툼으로 비집고 들어선 버스에서 시민들은 책가방의 고리에 걸려 자칫하면 옷을 찢는다. 콩나물 시루 속에서 책가방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면 학생이건 시민이건 늘어져 버리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교통사정인데 책가방 때문에 한결 혼잡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던가, 중·고교생들의 오른팔이 왼팔보다 조금씩 길어졌다는 체위보고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10㎏에 가까운 책가방을 들고 6년을 등·하교했다면 하기야 어깨가 처질 것이요 팔도 길어질 것이다. 만원버스에서 시민의 옷을 찢는 공해물질이 학생들의 체위까지 불균형하게 좀먹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좀 무슨 방법이 없을까? 중3짜리 딸아이가 책가방에 짓눌리는 꼴을 보면서 아비는 교과서 분철제가 어떨까 생각해본다.
교과서와 참고서만은 한쪽에 구멍을 뚫어 철하는 바인더식으로 제본하면 어떨까? 그날배울 대목만 추려서 갖고 다닌다면 교과서와 노트 1권 분량으로 등·하교길이 한결 홀가분해질것 같다.
과외 추방, 교복과 두발의 자유화로 학원에는 많은 혁신이 있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가방만이 구태의연해야 하는 까닭을 필자는 정녕 알수가 없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장 가까운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사고의 맹점 속에서 망각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 있는 쥐 (?)가 없는 탓일까.
불편과 불합리를 개선해 나가는 지혜를 가르치는 일도 지식의 전수만큼이나 중요한 교육 내용이다. 그러니까 책가방이 불편하다면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그 한 방안으로 교과서 분철제가 어떨지를 당국자에게 긴급동의로 제안 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