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생 "위안부는 성노예" … 아베 "인신매매" 되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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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할머니 껴안은 하버드대생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7) 할머니가 26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만나 15세에 일본군에 끌려가 성노예로 살았던 사연을 들려준 뒤 학생들과 껴안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7일 하버드대에서 교수와 학생 200여 명 앞에서 강연했다. [사진 최미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결국 사죄하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apologize)’도 없었고,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개입했다는 것을 ‘인정(acknowledgment)’하지도 않았다. 아베의 ‘사과 없는 방미’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됐다.

 27일(현지시간)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을 찾은 아베 총리는 연설 뒤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많은 여성을 강제로 성노예로 만든 데 개입한 것을 인정하느냐”는 객석의 질문을 받았다. 한국계 하버드대 2학년생 최민우(20)씨의 질문이었다.

 아베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인신매매를 당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걸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이 마음은 역대 총리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는 것은 여러 번 말해 왔고 이런 관점에서 일본은 지금까지 위안부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위로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해 왔다”고 말했다. 최근 위안부 문제의 참담함을 희석시키기 위해 써 온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단어를 또다시 사용했고, 일본이 분쟁지역 성폭력 근절을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입했음을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시아 역내 긴장 완화 해법을 묻자 그는 “일본은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 속에 평화국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며 “중국·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중국의 군사 팽창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이 우려하고 있다”며 “(중국이) 역내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 평화적인 태도를 취하기 바란다”고 했다. 반면 인도에 대해서는 “최대 민주국가인 인도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일·인도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아베는 강연 뒤 워싱턴으로 향했다. 워싱턴 일정은 ‘전범국’ 이미지를 씻어내고 ‘평화국가’ 이미지를 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 애국심의 상징인 알링턴국립묘지를 참배했고,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자료를 전시하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았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 대해선 사죄하지 않으면서 전쟁의 야만성과 참화 앞에 고개 숙이는 이중적인 제스처였다.

 그러나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미·일 동맹 격상을 통해 ‘정상국가’로 거듭나려는 아베 총리에 대해 세계 언론은 비판을 쏟아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설에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략자로서 사과를 끝내는 시점을 스스로 결정하는 호사를 누릴 수 없다”고 지적하며 “일본이 ‘정상국가’라는 믿음을 외부 세계에 주려면 아베는 입술을 깨물고 또다시 사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베 총리는 26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보스턴 로건 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출국 전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일본과 미국의 강한 연대를 살려 21세기 평화와 번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보스턴 첫 방문지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기념도서관이었다. 케네디의 딸이자 현 주일 대사인 캐럴라인 케네디가 그를 안내했다. 저녁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자택에서 준비한 만찬에 참석했다.

보스턴=이상렬 특파원, 서울=서유진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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