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 내고도 … 웃지 못하는 정유4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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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에쓰오일은 올 1분기 4조3788억원 매출에 238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27일 밝혔다. 매출은 전년보다 42% 줄어든 반면, 영업이익은 407%가 늘었다. 유가 급락으로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던 지난해 4분기(영업손실 2440억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호(好) 성적’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이날 에쓰오일의 종가는 주당 7만4500원. 전날보다 2000원이 내렸다. 증권업계에서는 “현재 주가에 이미 실적 개선에 대한 예상치가 녹아있어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진 탓”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던 정유업계가 올 1분기 일제히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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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분기에만 4630억원의 적자(영업이익 기준)를 봤던 SK이노베이션은 2266억원(추정치)의 흑자가 예상된다. GS칼텍스 역시 지난 4분기 4523억원의 적자에서 올 1분기 2005억원 흑자전환이 기대된다. 지난해 4분기 주요 정유사 중 유일하게 13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현대오일뱅크의 이익 규모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처럼의 호성적에도 정유업체들의 표정은 어둡다. 한마디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는 의미)’이다. 대대적인 실적개선에도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는 건 1분기에 거둔 호성적이 실적개선의 시작이 아니라 단기간에 그치는 ‘반짝 성적’일 것이란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원유가 등락폭이 줄면서 일시적으로 수익이 나아지는 착시가 생겼을 뿐 중장기적으로 볼 때 정유업계의 사정이 나아지기는 어렵다는 우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체별로 ‘마른수건 짜기’는 여전하다. 고정비라도 줄여서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생각이다. 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운영비(교육비와 출장비 등)를 일률적으로 20% 이상 줄인데 이어 올해엔 가급적 해외 출장 자제령을 내렸다. 해외 출장때 비지니스 클래스 좌석을 이용하던 임원들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토록 했다. 이 회사 임원들은 이미 직급에 따라 연봉의 10~20%를 반납했다. 자회사인 SK인천석유화학의 인천 부지 내 유휴지(200억원 상당)도 매물로 내놓았다. 2013년 없앴던 야근도 부활했다. 때문에 점심시간에만 운영하던 서울 서린동 본사 구내식당은 석식도 제공한다. 미래에 대한 우려 탓에 근무강도까지 강해진 셈이다.

 GS칼텍스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총 100여 개 직영 주유소를 매각·정리하기로 한다. 계획대로라면 3000억원 대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중동에 치우쳤던 원유수입선도 중남미 등으로 다변화했다.

 에쓰오일은 고부가가치제품 생산 위주로 공장을 재편하는 한편 상무급 이하 임원은 해외출장시 이코노미석을 이용토록 했다. 서울 공덕동 본사 사옥 내 조명은 모두 LED로 교체했다. 전기세까지 아껴보잔 생각이다. 불필요한 출장을 줄이자는 취지로 화상회의 장비도 도입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이미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한 상태다. 여기에 최근엔 임직원 별로 월 대리운전 이용 횟수를 5회 이내로 제한하는 등 강수를 뒀다.

현대오일뱅크는 아예 원가절감 태스크포스(TF)를 상시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현실은 정유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선 SK이노베이션이 내놓은 인천 지역 유휴부지는 아직도 매수자를 찾고 있다. GS칼텍스가 지난해부터 내놓은 직영주유소들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정유사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원유 수입처 다변화 역시 암초를 만났다. 최근 멕시코 국영석유사인 페멕스(PEMEX)에서 국내 일부 정유사들이 원유를 들여왔으나 정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일이 대표적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제설비들은 대개 중동산 원유에 맞춰 최적화되어 있는 반면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산 원유는 클로라이드(염화물) 성분이 중동산 원유보다 더 많이 함유돼 있어 기존 설비로 처리하려면 추가비용이 들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유업체 별로 추가적인 사업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사업포트폴리오 조정에 가장 소극적이었던 SK이노베이션도 올해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게 업계의 중론이다. 국내 정유사와 지분 관계를 맺고 있는 외국업체들이 자사 보유 지분 정리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수기·김기환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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