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황과 막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우리집 막내 연경이가 자동차 열쇠를 가지고 놀다 차안에 떨어뜨려버렸다. 그런줄도 모르고 차문을 잠가버린 나는 당황해 집 열쇠 꾸러미를 한웅큼 가져다 이것저것 맞추어 보았으나 맞을리가 없다
땀을 뻘뻘 흘리는 제 엄마 모습을 보던 연경이, 제딴에 좋은수가 있는지『엄마, 문 진짜 열수 있다 나 벌 안서도 되는거지 』그 말에 반가와 『그래, 상많이 줄께 아빠 오시기 전에 빨리 가르쳐줘 』 나는 여분의 열쇠를 제 유치원 가방에다 감취둔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 교황님이 열쇠 가지고 있대. 그 열쇠는 하늘문도 연다고 했어. 그러니까 아파트 문도, 자동차 문도 이 세상의 모든 문은 다 열린대. 그 열쇠는 요술열쇤가. 그 열쇠 우리도 사.』겁에 질려 눈물을 글썽거리던 얼굴이 어느새 생기가 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연경이는 눈에 보이는 것은 물어보고 충분한 해답을 줘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친구처럼 퍼머를 하자고 하니 요즘은 생머리가 더 세련돼 보인다나. 자칭 미스 제일유치원(유치원에서 제일 예쁘다는 뜻일게다)이란다. 이런 맹랑한 꼬마가 지난번 교황방문때 그 열쇠를 보고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엄마,교황님 많이 높아? 예수님보다 높아? 아니면 하느님보다 높은거야? 비바 파파는 하드 이름인데(비슷한 열음과자가 있다) 왜 저사람들이 비바 파파해 ? 저 흰옷 입은 아저씨들은 왜 땅에 옆드려 있어?』 참새처럼 조잘거리는 끝없는 질문이 피곤해 소리를 꽥 질렀더니 재 오빠방에 들어가서 오빠를 붙들고 물어본 모양이다 7살 위인 오빠가 주일학교에서 배운것을 제 동생한테 가르쳐 줬나 보다. 교황님 열기는 가셨지만 열쇠 사건을 생각하면 즐겁기만 하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706의 18>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