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무의식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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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개인적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슬로건이 하나 있다. “젊게 살자”가 그것이다. 우주만물이 시간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데,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자연 법칙을 거슬러 문명을 쌓은 인간은 늙지 않는 일을 문명의 혜택처럼 향유하려 한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일, 정신적으로 편협한 인식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노력이야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젊게 살자고 외치는 이들은 젊음의 방식이라 여기는 선입견을 세워 놓고 무작정 그것을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역할이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옷차림과 취미 활동을 즐기며 그것을 젊음이라 여긴다.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간단한 테스트가 있다. 상담 공간이나 치유 모임처럼 내면으로 집중해 있는 상태에서 “본인이 몇 살처럼 느껴지느냐?”고 묻는다. 내면 목소리를 유도하기 위해 “즉각, 셋 셀 때까지 답하라”는 조건을 붙인다. 실험 결과는 놀랍다. 신체 나이와 동일한 내면 나이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삼십대 후반 여성이 “열일곱!”이라고 답하고, 쉰 살 넘은 남성이 “열두 살”이라 답하기도 한다. 내면 나이가 스물다섯 살을 넘기는 경우도 드물다.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은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공식화하고 있다. 인간 내면에는 당사자가 감당할 수 없어 회피한 감정 덩어리들이 무의식 형태로 쌓여 있고, 무의식 핵심에는 해결하지 못한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 쉰 살이 넘었음에도 스스로를 열두 살처럼 느끼는 마음 작용이 그곳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순 살에도 첫사랑 같은 로맨스를 꿈꾸고, 일흔 살에도 환경이 불편하면 아이처럼 화낸다. 무의식은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황이나 대상을 고려하지 않은 채 표출된다. 그런 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심리적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돌봐주고 지지해 주기 바라면서 의존적인 내면 상태에 머문다는 점이다. “젊게 살자”는 주장이 혹시 스물다섯 살이 되지 못한,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우리의 내면 목소리가 아닐까 짚어보게 되는 지점이다.

 얼마 전 불행한 방법으로 세상을 떠난 이의 일상이 보도되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로서 수천, 수억의 돈을 타인에게 증여하면서 정작 본인은 값싼 옷에 단출한 거주 형태, 동전까지 저축하는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시간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아프게 드러나 보이는 듯했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