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최철한, 뤄시허에 '77분 설욕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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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석불(石佛)’ 이창호(右)와 그의 천적인 ‘둔도(鈍刀)’후야오위의 격돌. 이창호는 첫판에서 추상화같은 바둑을 선보이며 승리를 거뒀다.

두 판 모두 1승1패다. 삼성화재배 세계오픈(우승상금 2억원) 준결승전에 나란히 출격하여 중국기사와 맞붙은 이창호 9단과 최철한 9단은 똑같이 1승1패를 기록하며 16일의 최종국에서 승부를 가리게 됐다. 이창호는 중국의 강자 후야오위(胡耀宇) 8단과 명승부를 펼친 끝에 13일의 첫판을 이긴 뒤 15일의 둘째판에선 졌다. 반대로 최철한은 속기의 귀재 뤄시허(羅洗河) 9단에게 1국을 완패했으나 2국은 대마를 잡고 설욕했다.

◆ 이창호 VS 후야오위=대국장은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 강력한 방패를 연상시키는 후야오위는 이창호 9단에게 특히 강하다(상대전적에서 3승2패로 우세). 그는 첫날, 마치 이창호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 미소마저 지으며 대세력 작전을 펼쳤고 이창호는 피카소의 추상화를 보는 것 같은 난해한 삭감전법으로 맞섰다. 너무 어려워 해설자들도 할 말을 잊었다. 단지 명국이란 느낌이 있을 뿐 귀신도 모르는 한판이 이어졌다. 끝나고 보니 이창호의 승리였다.(168수 백 불계승)

하루 쉬고 15일 2국이 이어졌다. 출발은 흑의 이창호가 좋았다. 그러나 곧 끈질기고 침착하기 이를 데 없는 후야오위의 추격이 시작됐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졌고 차이는 점점 좁혀지는 듯 싶더니 기어이 역전됐다. (239수 흑 1집반패)

중국바둑의 주력이라 할 후야오위는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나 이창호는 위기다 싶으면 힘을 낸다. 이창호는 올해 세계대회서 춘란배 하나만 빼고는 우승이 없다. 최근엔 이세돌 9단에게 랭킹 1위 자리도 내줬다. 이제 이창호의 마지막 스퍼트를 지켜볼 때다.

◆ 최철한 VS 뤄시허=뤄시허 9단에게 후야오위처럼 강력한 이미지는 없다. 그는 한 등급 아래로 평가받아 왔다. 8강전에서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도 '이세돌의 방심'탓으로 치부됐다. 당연히 최철한에겐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뤄시허가 놀라운 속기 솜씨와 수읽기 능력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 정도의 '가벼운 재주'로는 최철한의 철벽을 넘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첫날 쓰러진 것은 뤄시허가 아니라 최철한이었다. 처음부터 실리부족증에 허덕이다가 총공격에 나섰으나 오히려 뤄시허의 날카로운 역습타를 맞고 쓰러졌다.(227수 백 불계패)

중국 측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뤄시허는 중국 최고의 기대주였는데 술을 끼고 사는 바람에 성적이 나지 않았다. 부인의 눈물어린 설득으로 술을 끊었고 성적이 급상승하고 있다." 뤄시허의 진짜 실력은 따로 있다는 얘기였다. 최철한이 걱정되는 분위기였다. 15일의 2국은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일소했다. 뤄시허는 초반부터 너무 서두르다가 최철한의 연속 공격을 받고 주르륵 허물어졌다.(139수 흑 불계승)

세계대회 사상 최단시간인 1시간17분 만에 끝난 2국은 허망의 극치였다. 어느 것이 진짜 뤄시허의 모습일까.그 비밀은 3국에서 밝혀질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하이라이트>=최철한 9단(흑)과 뤄시허 9단(백)의 준결승 2국. 초반 우상에서 크게 성공한 흑은 A의 귀살이만 해도 유리하다. 그러나 최철한은 '독사'라는 별명답게 1로 뻗어 대마를 잡으러 간다. 백2로 귀는 사망. 그러나 확신에 찬 흑3,5의 수순으로 대마는 몇 걸음 못 가고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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