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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덕유산 상고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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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겨울 덕유산에 꽃이 핀다. 가파른 능선을 넘나들며 온 산을 휘도는 안개가 나무며 바위며 마른 풀포기에조차 그대로 얼어붙어 희디흰 꽃으로 피어난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산다는 주목도, 하늘 향해 뻗은 고고한 구상나무도, 잎을 다 털어낸 철쭉 무리도, 그저 겨울 덕유산에선 너나없이 온몸으로 피어난 순백의 꽃일 뿐이다.

"아이구야! 내가 무슨 복이 많아서 상고대 피는 광경을 다 보네. 살면서 이런 장면 한번 봤으니 여한이 없다 아이가." 멀리 마산에서 달려와 연방 감탄사를 토해 놓는 초로의 사진작가 또한 어느새 하얗게 피어났으니, 산에 있는 모든 것은 상고대로 피려나 보다.

상고대는 서리가 얼어붙어 피어난 꽃으로 나무서리라고도 한다. 기온이 영하 6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 습도가 90% 이상일 때, 해발 1500고지 이상의 조건에서 잘 생겨난다. 나뭇가지 위에만 눈이 쌓인 눈꽃과 달리 나무의 어디건 붙는 대로 하얗게 변하는 상고대는 바람 불어오는 방향으로 점점 더 쌓여 간다. 산호처럼 눈부시다가 때론 사슴의 뿔 마냥 우아하니 한겨울 삭풍이 오히려 반가울 따름이다.

아랫녘 금강 줄기와 계곡에서 불어오는 습한 대기로 겨울 덕유산은 상고대가 자주 내린다. 그만큼 자욱한 안개 속에서 촬영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꽃이 되는 상고대처럼 흐릿한 안개 속에서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채색을 쓰지 않고 담담한 운치를 담은 수묵화의 분위기를 촬영하기엔 흐린 날이 오히려 좋다.

Canon EOS-1Ds MarkII 16-35mm f13 1/40초 ISO 200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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