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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학자 초청 좌담] 이라크戰 이후 中東의 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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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라크전이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지 약 한달반이 지났다.미군의 이라크 주둔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모로코에서 잇따라 대형 테러가 터졌고, 추가 테러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미국이 주도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동평화 구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본지는 학술진흥재단 산하 ‘21세기 중동·이슬람 문명권 연구사업단’(단장 외국어대 박종평 교수)이 지난 24일 주최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세 명의 중동학자들을 초대해 향후 중동질서의 향방을 가늠해 보는 특별좌담회를 마련했다.

사회=최근 사우디아라비아.모로코 등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사건들은 누구의 소행이고 왜 발생하고 있는가.

샤르칸스키=누가 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알카에다를 비롯한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이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여러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점을 고려할 때 배후에 국제적인 조직이 있는 게 확실하다. 이런 테러행위는 '정치적 우둔함과 지나친 열정'에 기인한다. 이슬람인들은 이 같은 테러행위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

자바시니=우둔함이나 종교적 광기로 최근의 폭력사태를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며 문화.종교적 편견이다. 중동에서 폭력사태가 최근 자주 발생하는 것은 '신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봐야 한다. 이라크 전쟁.팔레스타인 분쟁.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외부 침략과 억압에 저항하는 움직임이다.

파타흐=이라크.이란.수단.리비아 등에 대한 경제제재도 중요한 변수다. 경제제재로 고통받은 국민들의 반미.반서구 감정은 극에 달해 있다.

사회=이라크전 후 테러 사건이 증가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예견해 왔다. 최근의 연쇄 테러와 이라크전의 관계는.

샤르칸스키=이슬람 테러리스트는 이라크전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민간인을 공격했다.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 대사관 폭파사건, 2001년 9.11 테러,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테러 등 대규모 테러가 그것이다. 물론 이들이 이라크 전쟁 이후 더 깊어진 '서구에 대한 반감'을 표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테러와 이라크전의 직접적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파타흐=이라크전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 같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중동 질서의 대변혁을 가져왔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보는 중동인들은 18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유럽의 식민통치를 회상한다. 중동인들에게 미국의 이라크 군정은 또 다시 '새로운 식민시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안겨준다.

사회=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가 13년 만에 풀렸다.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인가.

파타흐=13년 동안 막혀 있던 경제의 강이 다시 흐르게 됐다. 교육.의료.환경 등 하부구조가 빠른 속도로 재건될 것이다. 그러나 유엔과 아랍연맹이 이라크 재건을 주도하거나 적어도 감시기능을 해야 한다. 석유수입의 철저한 관리와 분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심각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사회=경제 문제가 해결되면 미국이 언급한 이라크의 민주화는 가능한가.

샤르칸스키=미국과 영국은 이라크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현재도 집회.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인이 다수인 이라크는 절대 민주화될 수 없다.

사회=민주화를 위해 미군의 장기 주둔이 필수적이라는 말인가.

샤르칸스키=그렇다. 서구 수준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미군이 영구 주둔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영구 주둔할 수는 없으므로 미국은 높은 수준의 민주화보다는 경제 및 사회 기반 구축과 정치 안정에 주력할 것이다.

자바시니=중동의 정치현실이 희망적이지 않은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전 세계가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낙후한 정치체제라고 분류하는 것은 문제다. 이슬람 법.제도, 그리고 사상으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정치.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이슬람은 정당한 사회와 공평한 분배를 지향한다.

사회=이라크전 이전에 미국은 항구적인 중동평화 정착을 약속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해결을 위해 제시된 '로드맵(단계별 중동평화안)'의 실현 가능성은.

샤르칸스키=팔레스타인인들이 테러를 중단하지 않으면 어떤 평화 노력도 성공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수년 전 최대한 양보했지만 팔레스타인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화정책을 틈타 자살테러만 급증했다.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은 '우리 엄지손가락 밑에 있는 벌레'다. 이스라엘은 자치정부를 언제든지 무효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팔레스타인이 민주화돼 진정한 대화에 나설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

사회=현재 폭력사태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책임이 더 크다는 말인가.

자바시니=타민족을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안방에 침입한 강도가 집주인이 저항한다고 불평하는 꼴이다.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평화안은 팔레스타인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사회=향후 중동 정세는.

샤르칸스키=최악의 상황이겠지만 사우디아라비아ㆍ이집트ㆍ이란 등에서 혁명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도 급격한 정세 변화를 원치 않고 있어 '현상유지' 양상을 보일 것이다.

파타흐=솔직히 이라크전 이전부터 중동의 정치.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전쟁은 이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중동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자바시니=유일한 해결책은 이슬람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 및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회.정리=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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