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모, 본헤드 플레이는 과도한 집중력의 착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본헤드(bonehead)'는 두뇌 회전이 빠르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야구에서 '본헤드 플레이(bonehead play)'는 어처구니 없는 실책을 뜻하는 단어다. 프로야구 한화 포수 정범모(28)가 지난 21일 서울 잠실 LG전에서 최악의 본헤드 플레이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5회 말 한화가 0-2로 뒤진 2사 만루에서 투수 유먼이 LG 이진영과 풀카운트 승부 끝에 밀어내기 볼넷을 줬다. 마지막 공은 바깥쪽 낮은 공이었다. 정범모는 벌떡 일어나 1루수 김태균에게 공을 던진 뒤 더그아웃으로 뛰어 들어갔다. 삼진을 잡았을 때 하는 행동이었다.

그 순간 3루주자 오지환이 밀어내기 볼넷으로 홈을 밟았고, 2루 주자 정성훈도 홈까지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점수는 0-4로 벌어졌다. 볼넷을 삼진으로 착각한 정범모의 명백한 실수였다. 한화는 결국 0-10 대패를 당했다.

본헤드 플레이는 1908년 메이저리그 뉴욕 자이언츠 20세 유망주 프레드 머클의 플레이에서 비롯됐다. 시카고 컵스전 1-1로 맞선 9회 말, 2사 주자 1·3루에서 머클은 1루 주자였다. 타자가 끝내기 안타를 쳐 3루 주자가 득점했는데, 이를 본 머클이 2루로 가다 발길을 돌려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머클이 2루를 밟아야 타자의 안타가 성립되고 주자의 득점이 인정되는데 경기가 끝난 줄 알았던 것이다. 2루수가 심판에게 어필해 득점 무효로 무승부가 됐다. 이 실수는 '머클의 본헤드(Merkle's bonehead)'라는 제목으로 다음날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정범모는 왜 본헤드 플레이를 했을까. 정범모는 유먼이 던진 마지막 공(6구)을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했다. 정범모의 뒤에 있던 우효동 주심이 외친 "볼, 사이드"라는 말을 "스트라이크"로 잘못 들은 것이다. 삼진으로 이닝이 끝났다고 믿고 1루수에게 공을 던진 것이다. 우 심판은 "공이 옆으로 빠져서 '볼, 사이드'라고 콜했다. 심판 경력 19년 동안 이렇게 볼을 선언해 왔다. 정범모도 '죄송하다. 사인을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범모의 본헤드 플레이에 야구 팬들은 바보같은 실책이라고 질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생각은 조금 달랐다. 스포츠 심리학자인 이건영 박사는 "자주는 아니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과도하게 집중하면 착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정범모는 삼진을 잡고 이닝을 마무리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심판의 '볼, 사이드'라는 말을 스트라이크로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심리학은 이런 현상을 '확증 편향'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에 들어맞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 외의 정보는 걸러내는 인지적 편견이다.

포수라는 특수 포지션도 본헤드 플레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야수들은 아웃카운트와 경기 상황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심판을 항상 주시한다. 또 수신호를 주고 받으며 상기시킨다"며 "그러나 포수는 주심을 등지고 있다. 청각에만 의지해 볼카운트를 확인한다. 긴장한 상태에서는 착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본헤드 플레이를 한 당사자는 정신적 충격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범모는 개의치 않았다. 22일 LG전에 8번타자 포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한화도 5-2로 LG를 이기고 9승9패로 5할을 맞추고 5위에 올랐다. 김성근 한화 감독을 비롯해 동료들이 정범모에게 힘을 준 덕분이다. 김 감독은 "정범모에게 신경을 쓰지 말라고 했다. 이런일로 빼면 쓸 선수가 없다"며 다독였다. 최진행은 "범모가 스스로 해야할 일도 잘 못하는 상황이 될 것 같아서 걱정했다. 스스로 잘 이겨낼 것"이라고 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