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보푸라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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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정례(1955~) '보푸라기들' 부분

검은 옷에 끈질기게 따라온 먼지들
악착같이 따라붙는 희끄무레한 것들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냐
세포가 되었다가
버러지가 되었다가
떨치고 일어나
짐승이 되고 싶은 것이냐

검은 옷에 악착같이 따라 다니는
보푸라기야
구렁텅이야



그녀가, 옷에 생긴 보푸라기가 성가신 먼지뭉치가 되는 시간을 주목하게 된 것은 자기 삶이 그것과 같다는 생각 때문. 옷에 '악착같이 따라붙는 희끄무레한 것들'이, 무엇인가에 집착하면서 살아온 자기 모습 그대로다.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냐'는 짜증은 자기를 향한 아픈 질문이고, 그녀는 결국 자신이 일상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존재임을 '신경질적으로' 선언한다. 조심하자, 나날의 시간이 함정이다!

박덕규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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